이태원 참사 첫 실형 이유 '이것' 때문…재판부 "경찰 책임 축소 시도"

수집·작성한 정보 목적 달성 후 즉시 폐기…法 "목적 미달성, 증거인멸"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내부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거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4.2.14/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이태원 참사 473일 만에 첫 실형 판결이 나왔다. '이태원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은 절차대로 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법원은 경찰의 책임 축소 및 은폐 정황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14일 오후 증거인멸교사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교사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부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김 전 과장의 지시를 받고 문건을 삭제한 곽영석 전 용산서 정보관은 선고유예를 각각 받았다.

◇규정에 따라 보고서 삭제?…법원 "핼러윈데이 무사 종료 후 삭제해야"

이번 재판의 쟁점이 된 건 '증거인멸' 여부였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용산서 정보관이 참사 전 작성한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 및 특별첩보요구(SRI) 보고서 등 문서 4건의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부장이 이태원 인파 위험을 예상한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는지가 유무죄를 가리는 핵심 쟁점이었다.

박 전 부장은 줄곧 규정대로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혐의를 부인해 왔다. "(보고서 삭제) 당시에는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에 관한 규정 7조3항에 따라 목적이 달성한 보고서는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게 박 전 부장 측 주장이다.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3항에는 "경찰관은 수집·작성한 정보가 그 목적이 달성되어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정보를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박 전 부장 측은 상급자에 보고한 문서이기 때문에 목적이 달성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문서의 목적은 공공안전 위험 예방과 대응에 있었다고 짚었다.

이날 재판부는 "공공안전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해당 정보 보고서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핼러윈데이가 무사히 종료되기 전까지는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이 사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파악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공공안전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 조치에 해당한다"며 해당 문서를 삭제한 행위가 증거인멸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서들이 경찰이 이태원 참사에 충분히 대비했는지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근거 자료, 즉 증거로서 가치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앞서 검찰도 해당 보고서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폐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보고서를 폐기해선 안 되는 이유로 △삭제된 보고서 4건이 사고 책임 및 진상 규명에 필요하다는 점 △많은 정보관의 증언을 고려할 때 해당 보고서는 정보관들이 업무에 참고할 수 있고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 △사고 직후 해당 보고서에 대한 국회 자료제출 요구 △정보관들의 업무 실적 증빙자료 접수 등 행정적인 차원의 목적 등을 들었다.

2022년 10월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경찰 및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2022.10.3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지자체로 책임 유도…경찰 책임 축소 및 은폐 정황"

특히 법원은 경찰의 책임 축소 및 은폐 정황이 있었다고 봤다. 박 전 부장이 이태원 참사 직후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로 유도하고,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 삭제 역시 이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로 우리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돼 작동하고 있는지 진상 규명 및 책임 소재 파악·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집중됐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이 "경찰 조직 일원으로서 자료 보존 및 공개를 통해 수사와 감찰에 협조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정반대로 행동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초유의 피해가 야기된 이 사건·사고의 진상 규명 및 책임 소재 파악에 대한 전 국민적인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이 책임을 축소하고 은폐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려고 시도한 피고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선고는 해밀톤호텔 대표 이모씨가 불법 증축 혐의로 지난해 11월 벌금 800만원을 받은 뒤 법원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내린 두 번째 판결로, 첫 실형 사례다.

박 전 부장은 이번 재판과 별개로 부서 내 경찰관들에게 핼러윈 대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해 업무 컴퓨터에 저장된 관련 파일 1개를 삭제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