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달라진 법원 판단…'국정농단' 재판과 다른 점은

이전 판결선 합병으로 인한 주주 피해·정부 압력·뇌물 인정
법원 "승계만이 합병 목적 아냐…물산 주주 손해 증거 없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나서고 있다. 2024.2.5/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법원이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56)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정농단' 재판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합병에 따른 개미투자자들의 손해에 대해서는 다소 판단이 엇갈렸다.

하지만 국정농단 재판의 경우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것이 인정된 것일 뿐 불법성 여부는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1심 재판부의 설명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승계만이 합병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삼성물산 합병 TF 경영이사회(이사회)는 경영 악화 상황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도움 된다고 판단해 추진했을 뿐 이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합병 추진 여부를 전반적으로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지만 이를 불법으로 보기 어렵고 과정 역시 위법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인 셈이다.

◇주주 피해, 정부 압력·청탁 인정한 과거 법원과 다른 결론

과거 법원은 여러 차례 제일모직-삼성물산(모직-물산) 합병 과정에서 승계를 위한 불법 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합병에 관한 문제 제기는 2015년 합병 직후부터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은 합병에 반대하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고 삼성물산은 주주총회 합병 결의 전날 기준으로 1주당 5만7234원에 이를 되사겠다고 제시했다.

주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015년 법원에 가격조정을 신청한 데 이어 이듬해 2월 합병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합병이 유효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합병에 따른) 경영 안정화 등 삼성그룹과 각 계열사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면서 주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가격조정 신청은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2022년 4월 합병 시점 삼성물산 주가가 회사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주주들이 1주당 9368원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 등과 맞물려 주가 변동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에 정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본 판결도 여럿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를 전달받아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에 불리한 합병비율임에도 합병 찬성을 유도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로 2022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국제 상설중재재판소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ISDS)에서 문 전 장관 등 판결을 근거로 우리 정부가 한·미FTA 협정상 최소기준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 엘리엇에 배상금과 지연이자, 소송비용을 포함해 130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같은 정부의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 배경엔 이 회장의 뇌물 제공이 있었다는 판단도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8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승계 작업 실체와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대가성 있는 뇌물을 줬다고 인정했다.

이후 2021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했고 법정 구속된 이 회장은 같은 해 8월 가석방, 1년 뒤 사면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2024.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1심 법원 "삼성물산 주주들 피해 인정 증거 없다…경영 안정화로 이익"

그간의 법원 판단과 이날 판결을 가른 핵심은 '삼성물산 주주 피해'에 대한 판단으로 분석된다.

이날 1심 재판부는 합병 비율·시점이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정해졌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1대 0.35의 비율로 합병됐다.

재판부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돼 있었고 합병 비율·시점을 정하는 데 있어 삼성물산에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회장이 합병 과정에서 위법 부당하게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았다"며 "이사회는 악화한 경영 상황을 검토하고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의 뇌물공여 사건과 부당 합병의 관계에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대법원은 이 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에서 승계 작업의 존재, 박 전 대통령과의 대가 관계를 인정하며 부정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이것이 곧 미래전략실이 삼성물산 이사회를 배제하거나 의사에 반해 승계를 추진했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직-물산 합병에서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삼성그룹 승계만이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합리적인 사업적 목적이 존재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