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해소' 천명한 법원행정처장…'조희대표 사법개혁' 시동

취임 일성서 다양한 인사 개편 방향 언급…첫 대법관 회의 주목
재판부 임기 1년 연장안 유력…고법-지법 이원화 제도도 손 보나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4.1.1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취임 후 일성으로 "당면한 사법 과제는 재판 지연 해소"라고 강조하며 이를 위한 대대적 인사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과 다음달 초에 있을 법관 정기 인사와 맞물려 법관 사무분담,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 손질 등 '조희대표 사법개혁'이 어떤 식으로 실현될지 주목된다.

◇'재판장 임기 2년→3년·배석 1년→2년' 도입 유력 검토

천 처장은 지난 15일 취임사를 통해 △안정적 재판부 근무를 위한 법관 사무분담 △고등법원 중심 지방법원 법관 진입장벽 해소 △불필요한 전보 등 인사 최소화 △법관 증원 및 충원 △비선호 보직자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의 다양한 인사 개편 방향을 언급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11일 취임사에서 "국민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보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힌 것과도 상통한다.

특히 잦은 재판부 교체에 따른 사건 심리 단절과 중복은 재판 지연을 심화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혀 왔다. 이에 대법원은 재판부 임기를 재판장 2년, 배석판사 1년에서 각각 3년과 2년으로 늘리는 방안 도압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오는 18일 열리는 올해 첫 대법관회의에서 법관 사무분담 장기화 방안 예규 개정의 건으 논의될 예정이다.

재판부 임기 연장 안도 재판 지연 문제가 지적되기 훨씬 이전부터 법원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던 만큼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부 임기 연장안 도입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직답을 피하면서도 "사무분담 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오랜 기간 법원이 추진을 검토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관 회의에서는 사무분담 장기화 관련 논의와 함께 법원장에게 재판을 맡기는 안도 함께 논의된다.

조 대법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법원의 장기미제 재판을 법원장에게 맡겨 재판 지연 상황을 해소하겠다고 밝힌 만큼 해당 안은 도입이 유력한 상황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4년도 대법원 시무식에서 시무식사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4.1.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고등-지방 인사 이원화 제도 개선도?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인사를 분리하는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다시 살필 가능성도 커졌다.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는 지법 판사는 지법에서만, 고법 판사는 고법에서만 근무하는 제도다. 과거 고법 부장판사 보임이 사실상 승진제로 작용하던 시절, 승진에서 누락한 베테랑 법관들이 줄사직한다는 고법 부장 승진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2011년부터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견급 고법 판사들이 대거 이탈하는 부작용이 생긴 만큼 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계속해서 제기됐다.

애초 법관 인사 이원화 제도 도입 당시 고법 판사는 서울에서 근무할 것을 상정했으나, '황제노역' 사건으로 지역법관(향판)제도가 폐지되고, 최근 고법 판사들의 줄사직이 이어지면서 지방에 근무할 고법 판사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지방 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런데 이 시기와 중·고생 자녀 교육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겹치면서 최근 몇 년 간 고법 판사들이 대거 사직하는 일이 반복됐다. 판사 경력 20년차인 사법연수원 33기 고법 판사들의 올해 '줄사직'에도 이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고법 부장 승진제가 폐지되면서 판사들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도 사라진데다, 고법 판사가 선발제로 운영되면서 사실상의 승진제처럼 기능해 지법 판사와 고법 판사 간 미묘한 갈등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실제 로펌에서도 고법 판사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한 해 15명 안팎의 고법 판사가 사직하는 것은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의 실패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만큼 지금이라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판사는 "20년 이상 재판한 사람 30명은 5년차 검사, 변호사 150명으로도 채울 수 없다"며 "제도를 구상할 때의 선의는 이해가 가지만 실제 판사들의 반응이나 인센티브는 간과한 듯하다"라고 짚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고법 판사들이 많이 사직하고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지금 와서 이원화(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 보이고, 현행 제도 안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인사 이원화 제도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법 판사의 지방근무 발령 시기 조정, 고법-지법 간 인사 교류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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