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어느 정도 예견했을까[이승환의 노캡]

검찰, 김광호 기소 여부 이르면 이달 발표…'업과사' 인정될까
'윗선 과실'과 '사고' 간 인과관계가 핵심 쟁점…참사 409일째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10.1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검찰이 조만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59·행시 특채)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번 주나 늦어도 내년 초 그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서울 치안을 총괄하는 김 청장은 지난해 10월29일 밤 이태원 참사 당시 업무적 과실로 시민들을 숨지게 하거나 다치게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죄명은 '업무상과실치사상'이다.

10일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09일째고, 김 청장이 검찰에 송치된 지 331일째다. 이태원 참사는 159명이 압사한 사회적 비극이었다. 피해 규모만 놓고 따지면 김 청장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는 얘기가 나온다. 왜일까?

◇'사고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윗선의 과실'과 '사고'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까다로운 혐의이기 때문이다.

먼저 업무상과실치사상은 가중 처벌되는 죄이다. 형법 제268조는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 혐의의 핵심 기준은 '사고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다. 요컨대 경찰관이나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주의 의무 등 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김 청장은 참사 발생 전인 지난해 10월 두 차례 화상 회의를 했다. 인파 집중 위험성이 있어 시민 안전 대책을 모색하는 차원이었다. 그는 참사 발생 12일 전 화상회의에서 '인파 집중'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핼러윈 축제의 대규모 인파 밀집 가능성과 안전 대책 필요성이 담긴 정보보고서가 참사 2주 전 김 청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김 청장은 '사고(참사) 가능성'을 예견했던 것일까? 위 정황만을 갖고 '100%'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주기를 맞은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공동취재) 2023.10.2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인파가 몰리니 위험하다'는 통상적인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과 '사망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참사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후자임에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처벌받을 수 있지만 전자일 경우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크다.

경찰은 치안 상황 보고를 받은 김 청장이 핼러윈 당일 밤 안전사고 가능성을 통상적인 수준보다 '구체적으로' 예견했다고 봤다. 그런데도 경찰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검찰도 같은 판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지휘부의 주의의무 위반과 인명피해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재판에서 인정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입증되기 어렵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현장에서 멀리 있으면 현장 상황을 알기 힘들고, 현장에 가까이 있으면 현장 상황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례를 종합해도 현장에 있는 지휘관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장 상황을 알고도 미흡하게 대처했을 경우 재판부가 인명 피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세월호 참사 때도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경일 전 목포경찰서 123정장은 대법원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이 확정된 바 있다.

같은 혐의를 받았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지휘부 10명은 그러나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이들이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무적으로 판단하지 않겠나"

검찰은 참사 발생 전후로 현장에서 떨어져 있던 김 청장의 기소 여부 결정을 미루며 고심을 거듭해왔다. 반면 참사 때 현장 지휘관이었던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지 20일 만에 기소했다. 지방자치단체 현장 지휘관인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경찰의 송치 17일 만에 기소했다.

일각에서는 김 청장의 기소 여부를 이미 결정한 검찰이 여론을 주시하며 '발표 시점'을 저울질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수사통'으로 꼽히는 경찰 중간 간부는 말했다. "김 청장을 기소해도 법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불기소해도 법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정무적'으로 판단해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나."

검찰이 실제로 정무적 판단을 할지 곧바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기관과 재판부의 판단은 '선례'로 아로새겨진다는 것을. 훗날 이태원 참사 같은 압사 사고가 또다시 발생한다면 법적·도덕적·정치적 영역을 아우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을. 검찰이 정무적인 판단을 한다면 이 점까지 고려해 주길 바란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