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싫어? 그럼 형법으로" 검찰, 재계 계속 '조준'
경제민주화 추진 위한 상법 개정안 재계 반발로 무산
재계 '총장 흔들기' 한축 의심...검찰·국세청 협공 양상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단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발표를 듣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뉴스1 © News1
</figure>경제민주화를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꺼내 들었던 상법 개정안이 재계의 거센 반발로 좌초될 형편에 처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어쩔 수 없이 '속도 조절'을 요구한 상태여서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기세좋게 치켜든 깃발을 멋쩍게 내려놔야 할 처지가 됐다.
개정안은 ▲이사회의 감독기능 강화 ▲집중투표제 간접적 의무화 ▲소액주주를 위한 전자투표제 일부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재계는 이중 감사위원 이사 선출 시 3% 이상 소유 주식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키로 한 부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외국인 지분 비율이 높은 삼성전자(47.5%), 현대자동차(44.4%), KT(43.2%) 등 주요 대기업들의 경우 외국인 투기 세력의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재계는 개정안 통과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영 투명성을 높여서 기업범죄를 줄이자는 상법 개정안이 싫다면 형법으로 다루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한 검찰 간부의 발언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정당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좌초되면서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당국의 칼날이 다시 재계에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재계와 검찰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이다.
재계는 특수통 출신의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특수통 검사들을 앞세워 기업 수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온데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검찰 일각은 총장 취임 후 계속된 '채동욱 흔들기'의 한 축에 재계도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어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탈세 혐의를 확인한 뒤 범죄정보를 수집하며 내사해오던 검찰로 넘겨 수사를 확대하는 전형적인 기업 수사 방식이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국세청도 강도를 낮출 기미는 없어 보인다.
국세청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지냈던 조석래 회장이 이끄는 재계 순위 26위의 효성그룹을 타깃으로 삼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5월 말부터 효성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시작한 국세청은 조석래 회장에 대한 거액의 탈세 혐의를 포착했다. 조 회장의 막내 동생인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그의 장남 조현강씨 등은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폭로도 나온 상태다.
국세청은 조 회장이 차명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재산을 해외에 빼돌리려 한 정황을 파악했다. 이같은 혐의로 국세청은 법무부를 통해 조 회장과 경영진 2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세무조사도 지난달부터 사기 등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했을 경우 실시하는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했다. 국세청은 이달 중으로 조사를 마무리한 뒤 검찰 고발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사정당국 내부와 재계에서는 소문으로만 돌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 '손봐주기'가 현실화된 것이란 반응도 나오고 있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상법 개정안을 설명하고 있는 서봉규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왼쪽)과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박찬호 전국경제인엽합회 전무. /뉴스1© News1
</figure>포스코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지난 3일부터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는 3년만에 이뤄진 것인데 통상적인 정기세무조사가 4~5년마다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분위기다.
이 역시 용퇴를 바라는 청와대가 정준양 회장을 겨냥해 사퇴를 압박하는 카드라는 해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언론을 통해 정 회장의 자진사퇴설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
포스코 측은 "사의 표명은 오보"라며 중도 사퇴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정당국의 압박 강도가 더욱 세지면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순위 5위인 롯데그룹도 계열사들이 전방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롯데쇼핑에 이어 롯데호텔, 롯데정보통신이 이미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진행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감사원에서, '단가 후려치기' 의혹 등으로 공정위 조사도 함께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 오너 일가의 혐의가 발견될 때까지 파헤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 통지서를 받아든 상태. 이미 재계에 불어닥친 칼바람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대차 세무조사는 2007년 실시된 후 6년만이다.
아직 본격 세무조사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뉴스타파의 폭로로 공개된 조세피난처 유령회사 설립 연루 기업들도 사정권에 들어서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용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3남 선용씨도 명단에 포함돼 있다. 검찰 역시 세무조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수사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국세청은 올 상반기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혐의자 127명을 조사해 6016억원을 추징했다. 하반기에도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 기업에 대한 조사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한진그룹은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등이 명단에 포함됐으며, 대림그룹도 김병진 전 대림산업 회장, 배전갑 전 대림코퍼레이션 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화, SK, 대우인터내셔널 등 굴지의 기업들도 전현직 임원 등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경제검찰' 공정위와 '금융검찰' 금감원의 사정권 안에 든 기업들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검찰은 국세청 등의 조사가 끝난 뒤 고발장이 접수되면 즉시 수사에 나설 태세를 갖추고 범죄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있다. CJ그룹 수사 이후 또 다른 대기업 총수를 겨냥할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각 대기업들은 어느 회사가 대상이 될지 긴장하며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된 현대그룹, 카자흐스탄 구리광산 업체 헐값 매각 의혹 사건에 연루된 삼성물산 등을 수사하고 있다. 현대·GS·포스코·대우·대림·SK건설, 삼성물산 등 4대강 건설 사업에 참여한 대형 건설사들의 입찰담합 의혹 수사는 임원 비리와 비자금 의혹 수사로 뻗어나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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