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공모 좀먹는 심사 비리"…건축가들 뿔난 이유[집이야기]

심사위원 사전접촉 금지 캠페인, 2051명 동참
"공정한 심사 절차,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심사위원 매수나 거래가 일상화되면서 설계공모의 공정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건축계 스스로 자정을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뉴스1) 한지명 기자 = 건축설계공모의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건축계가 자정 운동에 나섰다.

대한건축사협회는 대한건축학회, 한국건축가협회 등과 함께 '심사위원 사전접촉 금지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설계공모 과정에서 심사위원과의 사전 접촉을 막아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홍사원 대한건축사협회 이사(공정 건축설계공모 추진위원회 담당임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심사위원 매수나 거래 같은 부당한 행위들이 일상화됐다"며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온 문제지만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는 건축사들에게 중요한 기회다. 하지만 일부 심사위원이 과반수만 매수되면 특정 프로젝트가 당선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로 민간 건축 발주가 줄어들면서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경쟁이 과열되자 문제는 더욱 심화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건축사협회는 지난 10월부터 '심사위원 사전접촉 금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협회에 따르면 11월 30일 기준 2051명이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이는 전체 회원 1만8000명의 약 10%를 넘어선 수치다.

홍 이사는 "캠페인 시작 후 많은 건축사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며 "올해 12월 말까지 이어질 이 캠페인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개선책 마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심사위원이 사전접촉 금지 서약서를 작성하지만 유명무실하다"며 "위반 시 실질적인 처벌 규정을 도입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 건축 설계공모' 관련 대한건축사협회 회원 설문조사.(대한건축사협회 제공)

또 "심사위원들은 공정한 심사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실격 사유가 명백한 경우에도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공정성은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스스로 자정을 통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 건축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건축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은 이번 캠페인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대한건축사협회를 포함한 5개 단체는 '공정하고 투명한 건축설계 공모 질서 확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심사위원과 참가자 간 사전접촉 금지, 심사의 전문성 강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등이 담겼다.

홍 이사는 "협회와 관련 단체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이런 문제들을 국토부에 건의할 예정"이라며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끌어내기 위해 건축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계공모의 공정성 확보는 건축계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홍 이사는 "설계공모는 이제 막 사무실을 개업한 젊은 건축사들에게 거의 유일한 기회다"라며 "기득권이 인맥과 로비로 이를 독식하면 후배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어야 젊은 건축사들이 성장할 수 있고, 건축계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며 업계의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건축사협회는 올해 말까지 캠페인을 이어가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제도 개선과 함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힘쓸 계획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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