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묶여도 1등하는 압구정 아파트값, 왜?[박원갑의 집과 삶]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4.4.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박원갑 KB국민은행부동산수석전문위원 = 한 언론사가 최근 3년간 서울 강남구 동별 아파트값 변동률을 조사했더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압구정동이 14.4%로 1등이었다. 역시 허가구역으로 묶인 삼성동이나 대치동, 청담동도 허가구역에서 제외된 다른 동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 수요가 줄어 집값이 내려갈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엉뚱한 결과치가 나온 것이다. 왜 도심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가격에는 큰 변화가 없을까?

경험적으로 볼 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효과는 교외와 도심, 투자와 실수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수도권과 충청권에 농지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정부는 일대를 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외지인 수요가 끊기면서 급매물이 속출하는 등 효과가 확 나타났다. 일반인 가운데 개발 예정지에 농사를 지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투자목적으로 취득할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농지를 산 사람은 ‘허가받은 목적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2년간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니 단순 자본이득 목적의 수요가 급감한다. 교외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투기세력을 차단하는 데는 즉효약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실거주 목적 수요가 많은 도심 주택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그 효과가 다를 수 있다. 서울 시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대지지분 6㎡ 이상의 집을 사려면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지 않고 체결한 토지거래계약은 무효다. 허가구역은 강남구 일부 지역 이외에도 여의도동, 목동, 성수동, 잠실동 등이 지정돼 있다. 이곳에서 집을 사려면 취득과 동시에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세입자 임대차 계약 만료 2~3개월 이하로 남아 있는 주택만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할 수 있다. 실제 거주하려는 사람만 매입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가격 측면에서는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허가구역에서 신고가를 경신하는 아파트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택시장이 갭투자보다 실거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갭투자 비중은 2021년 12월 60.1%에 달했으나 올 5월에는 37.3%까지 낮아졌다.

허가구역에서 집을 사려는 수요자는 그만큼 불편이 뒤따른다. 목적대로 이용하지 않는 경우 3개월 이내의 이행 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토지가액의 10% 내에서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원칙적으로 실거주 목적의 무주택자만 집을 살 수 있다. 갈아타기를 하는 유주택자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으나 조심해야 한다. 양도세나 취득세 중과를 당하지 않으려면 기존 1주택자의 경우 집을 사고 난 뒤 종전 집을 3년 이내 처분하면 된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이행강제금 불이익을 면하려면 그 기간이 1년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집을 사고 종전 집을 1년 이내에 팔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허가구역에서 집을 살 땐 종전 집을 먼저 팔고 난 뒤 사는 ‘선매도 후매수’ 원칙을 지키는 게 안전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서울 시내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아파트 단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패스트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신통 기획(신속통합기획)’ 선정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허가구역으로 지정되고 있다. 신통 기획은 사업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조합원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제도로 투기를 막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다. 현재 서초구 서초동 진흥, 잠원동 신반포 2차, 송파구 송파동 한양 2차, 신천동 장미 1·2·3차, 강동구 명일동 고덕현대,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 아파트 등이 허가구역이다.

최근에는 송파구 풍납동 풍납미성 아파트도 신통기획을 신청했다. 심지어 일각에선 집값이 안정되지 않으면 강남 3개구와 용산구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돈다. 현재 서울시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총 53.84㎢에 이른다. 요컨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거래할 때는 제약이 많이 뒤따르므로 자금 조달 방안이나 종전 집 처분 계획 등을 요모조모 잘 따져야 할 것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h99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