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청년 지원을"…청년재단, '일 경험' 지원 나선다

'경계선지능 청년의 맞춤형 일자리 마련 위한 간담회' 열려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 생태계를 조성"

(청년재단 제공)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편의점, 호텔 라운지, 베이커리 등 여러 일을 경험해 봤으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고, 센스가 없다는 이유로 질책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자책감이 많이 들었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자신감도 떨어지게 됐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경계선지능 청년 혜택을 제공해 근무할 수 있는 범위를 늘리고, 취업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다."(경계선지능 청년 A 씨)

청년재단이 이런 경계선지능 청년에 대한 지원에 나선다. 경계선지능 청년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위치한 청년으로, 정상생활으 하기 힘든 지능지수를 가졌지만 장애 등급으로는 분류되지 않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다. 국민 약 14%가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하며, 이 중 청년은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A 씨는 지난 23일 오후 3시 청년재단이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휘카페'에서 개최한 '경계선지능 청년의 맞춤형 일자리 마련을 위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간담회가 열린 휘카페는 경계선지능 청년에게 바리스타 일자리를 제공해 사회적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커피 전문 매장이기도 하다.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경계선지능'에 대한 공식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체계 논의가 희미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관심 밖에 놓여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업 교육 △취업 프로그램 운영 △장기 근무 시스템 마련 △교육·직무지도 환경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계선지능 청년이 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지만 '하지 못하는 일은 없는데, 상당히 늦는다'라는 점을 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진 휘카페 대표는 "우리가 정해놓은 직업군에만 청년들을 넣는 것은 정말 안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직무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서 청년들이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스템을 구축한 후 직무를 찾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고용주 입장에서 이들을 채용하려 할 때 조금이나마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데 최저시급을 적용하지 않는 게 어떨지도 제안한다"고 말했다.

경계선지능 당사자 또한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근무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시금 우울증 등 현상이 나타나고 고립·은둔 청년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장기적으로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촉구했다.

휘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경계선지능 청년 A 씨는 "휘카페에서 일할 때 크게 힘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들이 느린 행동을 이해해 주고, 제가 경계선지능 청년이라는 걸 이해해 주셔서 급하게 일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면서도 "다만 일주일에 두 번 일하고 있는데, 나머지 날에는 대부분 집에만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지원 시 경계선지능 청년에 대한 취업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계선지능 청년 B 씨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지만, 손님 응대 등에 어려움이 있어서 해고당했다. 그 이후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 하락, 실수에 대한 불안감과 상실감 등을 경험했다"며 "저와 같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생산직 일자리 발굴이 됐으면 좋겠다. 생산직 취업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경계선지능 청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마음도 비슷했다. 이들은 '늦지만 할 수 있다'는것을 이해해 줄 수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길 기대했다.

경계선지능 자녀를 둔 C 씨는 "딸이 어렸을 때부터 한글 교육을 하면서 ‘안 되지는 않는데 상당히 늦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하다가, 중학교 이후에 ‘직장을 다니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다"면서도 "막상 회사에 나가도 지원사업으로 들어온 아이는 우울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업무 가이드라인을 주고 방치해버린다. 절대 안 되는 청년들이 아니고, 천천히 시간을 주면 된다. 이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맡아서 할 수 있는 청년이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취업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이어갈 수 있는 교육, 직무지도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계선지능 자녀를 둔 D 씨도 "가르쳐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청년들이기 때문에 세세하게 쪼개서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노인과 경계선 청년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 노인복지 관련한 일자리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경계선지능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육미라 사단법인 별의친구들 사무국장은 "지능을 기준으로 한 용어가 아니라, 청년들이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용어가 있으면 한다. 특정 기술이나 직무보다도, 잘하는 것을 개발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을 제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소현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 자립지원팀장은 "경계선지능인의 경우 조기 발견이 어렵고, 당사자의 자기주도성, 부모의 인지와 성향 등에 의해 다양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며 "지원정책 및 제도의 부제로 인해 단편·반복적인 공급자 중심의 직업교육에 그칠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청년재단 제공)

청년재단은 이런 경계선지능 청년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다. 밈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은 '경계선지능 청년 일 역량 강화 훈련 및 일경험 시범사업' 진행을 위한 3자간 업무협약(MOU)을 맺으면서다.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향후 경계선지능 청년 중 진로 탐색을 희망하는 미취업 청년을 발굴 및 지원하고 일 역량 강화 훈련과 일경험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추진할 예정이다.

박기준 청년재단 매니저는 "시범적으로 밈센터나 고용개발원처럼 해서 일경험 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앞으로 청년과 당사자들을 몇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많이 지원해서 교육부터 직업 훈련, 일경험, 취업이 가능하면 도달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고, 실질적인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재단의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 시범사업은 △경계선지능 청년 당사자 직업기초능력 함양 및 직무실습 지원 △지원기관 협의체 구축을 통한 자원연계 서비스 제공 △주돌봄자(부모) 교육 및 교류회 지원 △직무지도원 양성 및 지원 △당사자·부모·가족 커뮤니티 지원 △연구 및 입법화 활동 △직업훈련·일경험 지원 통로 마련 △인식 개선 캠페인 등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 생태계 마련을 위한 종합적인 지원을 담고 있다.

박주희 청년재단 사무총장은 "경계선지능 청년은 평균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의 지능을 가진 청년으로, 적절한 직업훈련이나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채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청년재단이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 시범사업'을 다음 달부터 추진할 계획"이라며 "경계선지능 청년 당사자에 대한 직업기초능력 함양 및 직무실습 지원을 비롯해 당사자 및 부모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정책지원 촉구 등을 통해 경계선지능 청년 지원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dyeo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