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철강 역사 문래동, 이젠 주거와 문화의 중심지로[송승현의 손바닥부동산]
귀한 '준공업지역'…"개발되면 여의도와 쌍두마차"
철공소 1200여곳 일괄 이전 추진…복합상가 등 유치
- 황보준엽 기자, 신성철 기자, 박혜성 기자
(서울=뉴스1) 황보준엽 신성철 박혜성 기자 = 못 만드는 것이 없다는 별칭으로 유명한 동네. 50년 이상의 철공소 역사를 가진 문래동이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철공소 약 1300곳을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인근으로 한꺼번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재정비를 추진하고 있어서입니다.
뉴스1은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와 직접 문래동을 찾아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1930년 문래동의 태동…제조업 쇄락 후 젊은이 '핫플레이스'로
상대적으로 문래동은 같은 영등포구의 여의도동이나 당산동에 비해선 부동산으로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주거지역보다는 공장 근로자들이 북적이는 공업지역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문래동의 태동은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방직공장이 들어서며 마을을 형성했고 그 명맥이 196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1960~1970년대부터 철강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 철강단지로 변모하게 됩니다. 특히 1980년대 청계천에 자리잡았던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이사를 오면서 제조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문래동에선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 통용되곤 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에겐 으레 '문래동 ○○○'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이것저것 뚝딱 만들어내는 역할의 별명이 문래동 카이스트기도 했죠.
제조업 활황이 꺾인 뒤 문래동도 그렇게 쇠락하는 듯했지만, 저렴한 임대료에 2000년대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들이 만든 벤치, 간판 등 설치미술 작품들은 여전히 문래동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철공소와 예술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조합은 SNS를 통해 소문이 났고, 카페와 술집이 빈자리를 채워나갔습니다. 지금은 데이트 코스나 맛집을 찾는 이들로 붐비는 곳이 됐죠.
◇"철공소 통째로 옮긴다"…4차산업 시설로 변모
문래동의 철강단지는 이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영등포구가 최근 문래동 철공소 1279곳을 서울 외곽 등으로 일괄 이전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문래동은 그간 개발 압력이 높았던 곳입니다. 인근의 여의도나 당산에 비해 낙후됐다는 평이 많아서 입니다. 이미 철강소가 밀집한 문래동1~3가는 재개발을 위한 지구정비사업이 추진 중이고 문래동4가는 재개발 조합 설립 인가까지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영등포구는 어떻게 개발을 할지 청사진까지 마련했습니다. 4차산업 관련 시설과 영등포예술의전당을 유치하는 등 주거와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문래동도 여의도에 버금가는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준공업지역이라는 이점 때문입니다.
준공업지역은 용적률이 주거지역보다 높아 큰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연면적의 비율로, 높을수록 고밀도로 고층으로 개발이 가능합니다. 문래동도 여의도처럼 고층빌딩이 즐비한 지역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성수동이 이와 같았죠. 인쇄·부품·의류공장 등이 밀집한 노후 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은 지난 2010년 성수IT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며 본격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이 들어서며 일자리가 생겨나자 주거수요가 높아지게 됐습니다.
최근의 주거 트렌드는 직주근접입니다. 출퇴근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워라밸(일삶 균형)을 실현하기 위해서죠. 과거처럼 1~2시간씩 길에서 시간을 버리는 걸 감수하겠다는 이들은 찾기 힘듭니다.
이것이 업계에서 문래동을 향후 여의도와 쌍벽을 이룰 곳으로 꼽는 이유입니다.
다만 문래동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변모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큽니다. 철공소를 이전하려면 용역도 거쳐야 하고 국회와 관계 부처, 서울시 등을 설득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wns83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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