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관광객의 평양 지하철 탑승기…통일역→모란봉역 '통일 지우기'
관광 활성화로 평양 시내 모습들 공개…주체연호는 여전히 사용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최근 북한 지하철 역사와 열차 내부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에는 지난 10월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이 평양 지하철 천리마선을 탑승한 모습이 담긴 '평양 지하철(2024), 북한'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관광객은 우선 부흥역 매표소에서 종이로 된 지하철 탑승권을 샀다. 요금은 1인당 150원 정도다.
이어 '주체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라고 적힌 개찰구를 지나, 약 1분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승강장 내부는 아치형 천장에 샹들리에가 달려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한쪽 벽에는 '종합안내판'이라고 적힌 노선도가 붙어있었다. 평양의 지하철 노선은 단 두가지(천리마선·혁신선)로 단출한 편이다. 역은 노선별 8개로 총 16개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여성 승무원이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동그라미 모양의 패널을 들자, 4개량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왔다.
열차 내부의 모습은 마주 보고 앉는 형태가 한국의 열차와 비슷했다. 북한 열차의 내부 문 위쪽에 김일성·김정일 전 국가주석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는 점은 남달랐다.
관광객은 다음역인 영광역에 내려 신형 열차로 갈아탔다. 열차 안 조그마한 전광판에는 '평양지하철도를 이용하시는 손님들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날짜와 시각, 열차의 속도와 온도·습도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열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42㎞였다.
열차 한편에는 노인·장애인·임산부 등을 위한 전용좌석이 마련돼 있었으며, 시민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여러모로 한국 지하철 풍경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열차는 모란봉역에 도착했다. 원래 이곳의 역명은 '통일역'이었으나 김정은 당 총비서가 지난해 말 '적대적 두국가론'을 선언하고 통일·민족 지우기 작업에 들어가면서 올해부터 이 역의 이름은 '모란봉역'으로 바뀌었다.
영상 속 종합안내판에서는 다른 역과 비교했을 때 모란봉역의 글씨체만 미세하게 다른 사실이 포착됐다.
마지막으로 관광객은 개선역에 내렸다. 2019년 개조된 것으로 알려진 이 역에서는 신식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승강장 복도에는 터치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일부 시민은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조선중앙통신 기사 등을 읽기도 했다.
계단을 오르자 '신문, 잡지'라는 간판이 걸린 작은 상점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각종 CD 플레이어와 서적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스키선수 옐레나 발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흰 눈(2021)'의 CD도 있었다.
개선역 입구 전광판에는 '주체 113(2024)년 10월 8일'이라는 날짜가 표기돼 있었다.
이는 최근 북한이 '김정은 단독 우상화'의 일환으로 주체연호(김일성 전 주석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북한식 연도 표기법)를 점차 생략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일괄 폐지되지는 않은 채 여전히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관광객에 따르면 항공편부터 숙박, 식사, 관광을 포함한 4박 5일 일정의 이번 여행상품은 총 1378달러로, 한화 약 193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 관광 일정에는 평양 지하철 탑승을 비롯해 △만수대 분수 공원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주체탑 △만경대 소년궁전 등 주요 장소들을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줄곧 봉쇄해 온 국경을 지난해 8월부터 일부 개방하기 시작했으나, 관광은 러시아 국적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북한과 러시아는 군사적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의 밀착 행보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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