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로톡 사태' 막는다…정부, 의료·법률 광고 심의 개선
의협·변협 등 직역단체 심의 권한 '과도'…AI대륙아주도 중단
민간 심의제 '정부 심의' 위헌 취지 벗어나…"상생모델 추진"
- 이기림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광고 심의 권한을 가진 직역단체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과 잇따라 갈등을 빚는 가운데 정부가 규제 개선방안 모색에 나섰다.
최근 인공지능(AI) 법률상담 서비스 'AI대륙아주'가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으로 대한변호사협회가 징계 절차에 돌입한 뒤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례도 발생했는데, 정부의 노력이 신산업 규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최근 의료·법률 관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직역단체들의 광고 심의 권한에 막혀 신산업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찾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의료 서비스 광고에 대해 사전심의제도를 도입했으나, 2015년 헌법재판소가 해당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2018년 의료광고 자율사전심의 제도를 시행했다.
해당 제도로 인해 현재 의료광고의 심의 권한은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의료광고심의위원회가 갖고 있다.
법률 서비스의 경우에도 직역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광고 관련 세부 규제권한을 갖고 있다. 변협은 불법광고에 대한 판단 권한, 징계권 등도 지닌다.
문제는 이들의 광고 심의 권한이 과도해 신산업 발전은커녕 규제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앞서 변협은 법률 종합 포털 '로톡'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를 광고규정 위반으로 징계권을 행사했다. 법무부가 지난해 해당 징계를 취소했지만, 이번에도 'AI대륙아주'에 징계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하면서 해당 서비스는 중단됐다.
의료후기 등을 공유하는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갈등을 빚었다. 의료법상 의료 광고는 의협 산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역단체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사업자 간의 충돌이 잇따르면서 민간에 위임한 광고 심의제도에 개선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일례로 로톡, AI대륙아주 등으로 대표되는 리걸테크(법률·기술 결합 서비스) 산업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시장은 2027년까지 약 356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변협과의 갈등으로 정체된 상황이다.
정신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성장한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 진출하기 전에 국내 리걸테크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시작해야 한다"며 "제도 미비로 리걸테크 산업이 뒤처지면 안 된다"고 밝혔다.
정부 내 규제혁신 체계를 운영 중인 국조실은 이와 관련한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고 규제 개선 연구에도 나섰다. 국조실은 의료 플랫폼과 리걸테크 플랫폼의 광고 규제 관련 해외 주요국의 현황을 분석하고, 우리 광고 심의 제도 개선안을 모색하는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국조실 관계자는 "정부는 협업, 상생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며 "이익을 얻는 집단이라면 직접 나서서 상대 집단을 설득해야지 정부에 일방적으로 건의만 하고 나 몰라라 빠지는 건 안 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당장에 신산업이 대가를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는 소비 및 생활 형태로 위축되는 기존 산업 측에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컨센서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협업과 상생이라는 모델을 가지고 자리를 만들고 설득을 도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용역을 통해서는 상생모델을 찾고, 획기적인 개선방안이 있으면 그걸 정부가 추진해 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의료계가 의료광고 사전심의를 위헌 결정한 헌재의 취지를 곡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를 찾기 위한 결정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당시 헌재는 "상업적 성격의 의료 광고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보호대상이 된다"며 사전 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국조실은 해당 지적에 대해서도 고려할 계획이다. 현재 의료광고심의위원회 구성이나 사전심의 강제, 벌칙 규정 등 의료광고 자율심의제도 전반을 살피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 제도 하에서는 제2, 제3의 로톡 사태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며 "민간 규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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