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에 '의료사고 수사'…尹, 경험 풀며 공감 도모[통실톡톡]
일회용 봉지 사용 금지 철회 때도 과거 경험 활용
민생토론회서 국민 고충에 적극 공감…때론 실패도
- 정지형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종량제 봉투도 동네마다 사용 제한이 있는데 다른 동네에서 급하게 물건을 살 경우 어떻게 하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편의점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에 관해 참모들이 계도기간을 연장하며 추세를 지켜보겠다고 보고하자 이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생분해성 봉지를 사용하면 환경보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일회용 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 국민 불편만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은 당시 참모들에게 국민이 생활하며 자칫 불편을 겪을 수 있는 여러 측면을 세심하게 고려해 충분히 준비됐을 때 규제를 집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지시로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편의점 일회용 비닐봉지를 비롯해 카페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 허용 등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하게 됐다.
한 참모는 "직접 장을 보고 재활용하며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얘기"라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주요 정책 추진과 관련해 과거 본인이 겪었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올해 들어 힘을 줘 진행하고 있는 민생토론회를 놓고 봐도 과거 경험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모습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전날 의료개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윤 대통령은 과거 검사 시절 경험을 소환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 의료사고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지만 솔직히 사건 처리를 위해 한 달 동안 다른 일을 못하고 미제를 수백 건을 남기며 공부했다"며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인데 준비도 없이 그냥 의사를 부르고 조사하고 압박하면 다 병원을 떠나게 돼 있다"고 했다.
의료진이 의료사고로 과도하게 수사와 송사에 시달릴 경우 사망사고 발생 비율이 높거나 위험한 수술을 하려는 의사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10일 주택 민생토론회에서는 '녹물' 발언이 주목받았다.
윤 대통령은 노후주택 문제와 관련해 과거 지방에서 검사로 일할 때를 회상하며 "관사에 녹물만 심하지 않았어도 사표를 안 내고 근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과거 지방에서 근무할 때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겪어본 적이 있는 만큼 노후주택이 단지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공감을 표하면서다.
교통 격차 해소를 주제로 지난달 25일 개최된 민생토론회에서는 선거 때 김포골드라인에 탑승한 경험을 들며 "국민들께서 얼마나 출퇴근 길에 고생하시는지 저도 잘 안다"고 말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과거 자신이 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언급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주로 정책 추진에 자신감을 나타내기 위해 '해봐서 아는데'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가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참석자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과거 경험을 꺼내는 편이라는 게 참모들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본인이 직접 경험을 얘기해 발언이 생생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다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접하기 불가능한 사례를 드는 등 '경험을 통한 공감'이 매번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주택 민생토론회에서 보유세 등 과도한 과세가 불러오는 역효과를 지적하며 지난해 영국 국빈 방문 때 탔던 72억원짜리 벤틀리를 언급한 부분은 야권에 비판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앞뒤 맥락 없이 들었을 때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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