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에 '의료사고 수사'…尹, 경험 풀며 공감 도모[통실톡톡]

일회용 봉지 사용 금지 철회 때도 과거 경험 활용
민생토론회서 국민 고충에 적극 공감…때론 실패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열린 여덟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종량제 봉투도 동네마다 사용 제한이 있는데 다른 동네에서 급하게 물건을 살 경우 어떻게 하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편의점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에 관해 참모들이 계도기간을 연장하며 추세를 지켜보겠다고 보고하자 이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생분해성 봉지를 사용하면 환경보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일회용 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 국민 불편만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은 당시 참모들에게 국민이 생활하며 자칫 불편을 겪을 수 있는 여러 측면을 세심하게 고려해 충분히 준비됐을 때 규제를 집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지시로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편의점 일회용 비닐봉지를 비롯해 카페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 허용 등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하게 됐다.

한 참모는 "직접 장을 보고 재활용하며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얘기"라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주요 정책 추진과 관련해 과거 본인이 겪었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올해 들어 힘을 줘 진행하고 있는 민생토론회를 놓고 봐도 과거 경험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모습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전날 의료개혁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윤 대통령은 과거 검사 시절 경험을 소환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 의료사고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지만 솔직히 사건 처리를 위해 한 달 동안 다른 일을 못하고 미제를 수백 건을 남기며 공부했다"며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인데 준비도 없이 그냥 의사를 부르고 조사하고 압박하면 다 병원을 떠나게 돼 있다"고 했다.

의료진이 의료사고로 과도하게 수사와 송사에 시달릴 경우 사망사고 발생 비율이 높거나 위험한 수술을 하려는 의사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10일 주택 민생토론회에서는 '녹물' 발언이 주목받았다.

윤 대통령은 노후주택 문제와 관련해 과거 지방에서 검사로 일할 때를 회상하며 "관사에 녹물만 심하지 않았어도 사표를 안 내고 근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과거 지방에서 근무할 때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겪어본 적이 있는 만큼 노후주택이 단지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공감을 표하면서다.

교통 격차 해소를 주제로 지난달 25일 개최된 민생토론회에서는 선거 때 김포골드라인에 탑승한 경험을 들며 "국민들께서 얼마나 출퇴근 길에 고생하시는지 저도 잘 안다"고 말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과거 자신이 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언급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주로 정책 추진에 자신감을 나타내기 위해 '해봐서 아는데'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가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참석자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과거 경험을 꺼내는 편이라는 게 참모들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본인이 직접 경험을 얘기해 발언이 생생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다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접하기 불가능한 사례를 드는 등 '경험을 통한 공감'이 매번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주택 민생토론회에서 보유세 등 과도한 과세가 불러오는 역효과를 지적하며 지난해 영국 국빈 방문 때 탔던 72억원짜리 벤틀리를 언급한 부분은 야권에 비판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앞뒤 맥락 없이 들었을 때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kingk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