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영선 "반도체 전쟁 생존 위해 '국가 반도체위원회' 만들자"

"무기화된 반도체, 국가 군사력 좌우…위기의식 가져야"
"한국은 각개전투…정부·삼성·SK, 힘 합쳐 공동 대응해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한병찬 기자 = "대만은 가뭄이 들면 우선순위가 반도체에 쓰일 용수입니다. 국민들이 먹을 물보다 반도체 용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예요. 그래서 '사람이 먼저인가, 반도체가 먼저인가'가 항상 이슈래요. 대만은 반도체가 먼저라는 것이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주권 확보를 위한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와 대기업, 스타트업까지 포함하는 '국가 반도체위원회'를 만들고 선공정·후공정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서 반도체 무기화와 패권 국가 전략을 연구한 그는 최근 반도체 주권을 향한 한국의 생존 전략을 담은 책 '반도체 주권 국가'를 출간했다.

그는 오늘날 반도체는 무기화되면서 해당 국가의 군사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반도체의 산업·경제적 측면만 고려됐지만 이제는 군사·안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 산업이 됐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은 베트남전 패전 이후 100발 쏘면 90발의 오발탄이 나는 재래식 전투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우위에 설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무기에 반도체를 심어 센서·통신 기능을 통해 유도 무기를 만들었다"며 "이후 전략 무기로 걸프전에서 크게 승리했고, 이는 소련의 패망과 직결되면서 미국은 세계 1위 패권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 패권국가의 조건은 기축통화·첨단기술·우주 영토 확장인데, 이 중 우주 영토 확장의 핵심은 반도체"라며 "우주에서 중요한 건 발사체가 얼마나 정확히 날아가는지 속도와 거리를 계산하는 연산력이다. 그 연산력의 핵심은 바로 반도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돼선 절대로 안 된다. 경제·안보 전략과 군사력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전략 산업"이라며 "그래서 국가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서 미래에 주권 국가가 될 수 있다. 군사적으로도 강력한 지배 국가가 되느냐 못 되느냐를 가를 중요한 요인이 반도체"라고 말했다.

주요국들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규제를 내놓으며 견제에 나섰고 중국은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통해 내수시장 키우기로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강국으로 부활하려는 일본,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국가 안보를 위한 보험으로 내세우는 대만, 패키징 부문에 도전하는 싱가포르, 반도체 생태계 중심국으로 부상을 꿈꾸는 유럽연합(EU)까지 경쟁이 치열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좀 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전 장관은 "하버드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미래 반도체 공급망 지도를 보면 한국이 없고 그 대신 일본과 싱가포르가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반도체 인재들을 흡수해 지난해부터 미래 반도체인 칩렛(Chiplet) 시장을 열었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2나노미터 로직 칩 공장을 짓고 하버드대에 경제산업성 실장이 와서 브리핑한다"며 "한국은 정부에서도 오지 않고 기업도 초청되지 않았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박 전 장관은 반도체를 둘러싼 한국의 외교·산업 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뀌는 '갈지자' 걸음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도 그런 부분에 대해 한국에 신뢰감이 떨어진다고 한다"며 "한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미래 전략을 세우는 것에는 아직 상당히 뒤처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대책에 대해선 "(현재 반도체 위기를) 자각하고 있지만 핵심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며 "정부가 미래 비전과 관련된 부분을 핀셋으로 집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선 그걸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정부 부처 간에 수평적 리더십과 유연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전 장관은 반도체 주권 확보를 위해선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 육성 정책을 펴왔지만 이제는 약점으로 꼽혔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에 패키징 기술까지, 선공정·후공정을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모여 회의하는 컨트롤타워인 '국가 반도체위원회'를 만들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다 모여서 국가 단위의 반도체 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대만과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고 미국도 수백억 달러의 지원금과 함께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하고 있다"며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정치 산업계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키우기 위해선 해외의 고급 인력을 데려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전문 해외 인재의 월급 중 절반을 정부가 대주면서 고임금을 통해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싱가포르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하고 민간투자도 많이 일어나야 한다"며 "다양성과 유연함이 세계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정권과 상관없이 갈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21세기 과학기술 G7 국가 진입의 꿈을 담은 'G7 프로젝트'처럼 정권과 상관없이 민간에 자금을 지원하는 10~20년짜리 범국가적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지금은 'G7 프로젝트 2.0'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할 일은 미래 비전을 주는 것"이라며 "정치적 수사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하게 됐을 때 우리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이를 끌고 가는 것이 리더십이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them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