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좌파·토착왜구' 선동, 스스로 멸망할 행위[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지금으로부터 141년 전인 1884년(갑신년) 12월 4일 저녁 9시 일본세력을 등에 업은 소장 급진 개화파가 조속한 근대화를 목표로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1637년부터 조공관계를 유지해오던 청(淸)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기득권을 누려오던 민씨 외척 중심 온건 개화파 제거를 시도했다. 급진 개화파의 정변 시도는 한성(서울)에 주둔하던 청군의 개입으로 인해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일본은 정변 와중 일본 공사관 건물이 소실된 것을 핑계로 무력시위를 통해 조선에 일본측 피해에 대한 배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성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두고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청나라는 일본과 타협하여, 1885년 4월, 조선으로부터의 군대 철수와 추후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문서로 통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톈진조약'을 체결했다. 톈진조약은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강 이동, 두만강 하류 너머의 연해주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1861년 쓰시마섬 아소만 조차(租借)를 시도하다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의 간섭으로 일단 후퇴했다. 주춤했던 러시아는 1871년 블라디브스톡 군항 완공을 전후하여 조선의 원산(영흥)만과 영도(부산) 등을 노리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의 최대 관심사는 유라시아 대륙 동·서 여러 곳으로부터 집요하게 남진을 시도하던 러시아로부터 인도 식민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동북아의 요충 조선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했던 영국은 조선을 방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1차로는 청나라, 2차로는 근대화에 성공하고 조선과 류큐열도 등을 노리던 일본을 검토했다. 영국의 세계정책에 편승하는데 성공한 일본은 1895년 청나라, 1905년 러시아를 제압하고, 1910년 조선을 식민지화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이어 분단과 6·25 동족상잔을 잇달아 겪은 한국은 한반도 남쪽에서나마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군사,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괄목할 발전을 이루어 세계제국(world empire) 미국도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일 발생한 국가 변란(變亂)으로 인해 비상하던 한국의 날개는 절반쯤 꺾였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교 슬로건으로 하던 한국이 갑자기 동맹국 미국의 지지(支持) 없이는 존망을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번 변란은 급속한 고령화와 제조업 경쟁력 약화,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최첨단 분야 발전이 지체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이 가져온 부담에 더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비틀거리던 한국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했다. 미국은 물론 근린(近隣) 중국과 일본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은 한국의 변란이 한반도 전쟁과 경제위기로, 일본은 한반도 정세 불안 격화와 반일 정부의 등장, 그리고 경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자 여타 유럽 국가 지도자들에게 유럽이 초식동물로 남아있으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연구․개발(R&D) 투자는 물론, 보조금 지급과 통화관리, 공공조달 등을 앞세운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전기차, 태양광, 2차 전지 산업 등을 집중 육성하여 기존 무역질서를 흔들었다. 트럼프 1기 정부와 민주당 바이든 정부는 관세 인상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법 등을 제정해 주요 제조업의 미국 이전, 집중을 강력히 추구했다.
자유무역으로 상징되는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오는 20일 취임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관세 대폭 인상'은 물론,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파나마 운하지대 회수', '그린란드 매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가능성' 등 거칠기 짝이 없는 언사를 예사로 해 왔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초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세계는 '지경학적 분열'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한국과 일본 등에게 태풍으로 다가올 것이다. 트럼프에게 동맹국은 거래 파트너일 뿐 공동운명체 구성원이 아니다. 한국이 겪고 있는 국가적 위기는 한국 스스로의 회복 탄력성과 더불어 트럼프 2기 정부가 대(對)중국 최전선 국가인 한국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가치와 한반도 안보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무역·투자 측면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게 어떤 강도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강하게,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결정될 것이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트럼프 후보의 당선에 대비해 왔다. 북한의 러시아 밀착에 이은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중국은 '중국의 대문 앞' 한반도의 안정을 중시하는 대(對)한국 포용외교로 전환했다. 중국은 한국과 한반도의 안정이 중국의 국익에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오는 11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는 중국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26년 APEC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개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걸고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동맹국들과도 갈등을 빚을 때 2026년 APEC 정상회의를 통해 세계에 중국을 자유무역의 수호국이자 미국의 대안으로 인식시키고자 한다. 중국은 또한 많은 외국이 중국에 사절을 보낸다는 뜻의 '만방래조(萬邦來朝)'를 중국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2026년 APEC 정상회의를 2027년으로 예정된 시진핑 주석의 4연임으로 향하는 중요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일본 역시 트럼프 당선인측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는 한편,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도모하고 있다. 이와야 다케시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25일 방중해 리창 총리, 왕이 외교부장 등을 만나 일·중 외교안보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제3차 고위급 인적·문화교류대화 회의 일본 개최 등 10개항을 포함한 사회·문화·체육·영사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데도 합의했다. 일본은 중국군이 동중국해 진출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중국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속한 오키나와 열도 요나구니섬 남쪽에 새로 설치한 부표 철거도 요구했다.
맹자는 '나라는 스스로 멸망할 짓을 자행한 다음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정벌한다(國必自伐然後人伐之)'라고 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국의 침략 이전 그 나라 스스로 망할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도자는 능력도 분별력도 없고, 지도층은 출세욕만 가득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눈이 멀어 있으며, 일반 국민들은 서로 편을 갈라 자기편이 생각하는 진실 아닌 진실, 즉 망상에 집착하여 죽도록 싸워 나라가 멸망할 지경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망국 원인이라는 것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즉 외교안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국민들이 편을 나눠 서로 싸우는 가장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북한과 중국, 일본에 대한 정책이다. 어느 누구,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민감한 외교안보정책은 시행하기 전 국민들에게 되풀이 설명하여, 국민 대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 더 이상 '종북좌파', '토착왜구'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분별력 없는 지도자와 지도층이 국민들을 선동하여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드는 것, 즉 스스로 멸망할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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