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위기, '트럼프 2기' 한중일 경제취약성 높여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동북아 3국 경제의존도 높아…韓 정정불안, 中日에도 부정적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전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차장)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주한대사를 지낸 중국의 한 외교관은 동북아의 한반도와 동남아의 베트남은 '중국의 목을 겨누는 2개의 칼날'이라 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해양세력이 한반도와 베트남을 모두 장악하면 중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1592년 임진왜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청일전쟁, 1950년 6.25 사변 등 중근세 이래 한반도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무력충돌에 군사 개입했다는 것은 한반도가 중국의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통제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1884년 프랑스와 싸우고, 베트남 내전(1960~1975)에 개입한 미국을 축출하기 위해 북베트남을 지원했으며, 북베트남이 통일할 기세를 보인 1960년대 말 지원을 중단하고, 통일 직전인 1974년 남베트남이 지배하던 서(西)파라셀군도를 점령했으며, 통일 베트남이 친소, 반중 입장을 취하자 1979년 베트남을 침공했다.

중국을 겨누는 북쪽의 칼날 한반도의 전략 핵심 경기만에는 수도 서울의 관문 인천이, 남쪽의 칼날 베트남의 전략 핵심 통킹만에는 수도 하노이의 관문 하이퐁이 자리하고 있다. 하이퐁은 한자로 '해방(海防)'이라고 쓴다. '바다로부터의 공격을 막는다'는 뜻이다. 중국은 경기만과 통킹만이 중국의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19세기 말 이래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외세가 인천이나 하이퐁에 세력을 부식(扶植)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화교가 인천에 가장 먼저 터전을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패자(霸者) 러시아가 동쪽의 만주, 가운데의 몽골, 서쪽의 신장 등 세 방향으로 남진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바다로부터의 침투와 육지로부터의 침투 모두를 전력을 다해 저지하기에는 힘이 부족했던 중국의 지도자들은 해안지역 방어를 우선하자는 해방론(海防論)과 육지국경 방어를 우선하자는 새방론(塞防論)'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해방론은 자연스레 친러(친소련), 새방론은 친영(친미)과 연결되었다.

1949년 세워진 신중국 역시 미.소 냉전구조 속에서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대륙간탄도탄(ICBM)을 개발, 확보하여 해양세력 미국과 대륙세력 소련 모두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중국은 소련이 핵위협을 가하자 미국과 손을 잡았다. 냉전 종식 후 중국은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한국과 수교했으며, 베트남과의 관계도 개선했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2010년을 전후하여 미국으로부터 강력하게 견제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은 러시아와 밀착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와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으로 구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포함한 다자협력기구도 활용했다. 중국은 이전과 달리 경제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2기 미국 정부를 맞게 되었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만 하더라도 활황이던 부동산 부문이 경제성장의 1/3 이상을 담당하여 무역전쟁의 악영향을 상쇄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2021년부터 중국 부동산 시장은 활력을 잃어갔다.

가계·기업·지방정부 모두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것도 위험 요소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정부와 가계, 기업 부문 부채를 모두 합하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배 이상인 약 70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렇게 악화된 경제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고강도 관세전쟁을 시작하면, 중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중국 경제계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정부가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말했던 대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몇십 %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에 거점을 둔 외국 기업의 60-70%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까지 말한다. 가뜩이나 내수 상황이 안 좋은데 수출마저 더 부진해지면, 기업 도산 증가→실업률 증가→사회 안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경제난이 사회불안정과 농민반란을 야기하고, 농민반란 확산이 결국 왕조 교체로 이어진 역사를 잘 아는 중국 지도부에게는 악몽이다.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이 중국에 미칠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 왔다. 마찰을 빚어온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사회 안정을 위한 '방화벽 구축'과 '회복 탄력성 제고'를 추진함으로써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에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간 밀착을 막고, 한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계획도 수립했다. 지난 11월 시행된 한국, 일본 등에 대한 일방적 비자 면제 조치는 이의 일환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에 맞서야 하는 중국에게 있어 2024년 12월 현재 북쪽의 칼날인 한반도 남부의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정정불안은 상당한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동북아 주요 3국 간 경제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정불안은 중국과 일본 경제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국가 리더십 위기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을 받게 될 한국과 중국, 일본 경제의 취약성을 높일 것이다.

중국은 사회안전망 강화와 통제조치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내년부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조치들을 시행할 예정이다. 농민공(도시 호적이 없는 농촌 출신 노동자) 차별을 야기한 '후커우(중국식 호적) 제도' 정비를 포함한 각종 제도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반간첩법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는 기밀보호법을 강화하여 노트북, 휴대전화 등을 불심검문 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 주민번호제도(왕하오: 網號)' 도입도 검토 중이다. 국민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취해지는 각종 통제 조치들은 중국의 회복 탄력성을 약화, 또는 지체시킬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국가 리더십 위기 상황의 한국에 통상 압력을 가할 경우 한국 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다. 한편,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은 실업 증가를 우려하여 보조금을 지원해 가면서까지 철강 공장 폐쇄를 막고 있다. 타국 철강기업들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버틸 것이라 한다. 포스코(POSCO)는 지난 7월과 11월 포항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현대제철도 지난 11월 포항 2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롯데그룹의 유동성 문제가 제기된 것도 중국 유화기업들의 밀어내기식 수출 공세에 직면한 롯데케미컬 때문이다. 철강과 유화 등 우리나라 핵심 산업의 위기는 실업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포항과 울산, 여수 등의 지역소멸 문제도 악화시킬 것이며,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 국가 리더십 붕괴 상황의 한국은 당면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을 기초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사이에서 지정학적 균형을 최대한 감안하면서 대외정책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