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공화당 정강서 사라진 北 비핵화…'핵 군축' 추진 우려

'2개의 전쟁' 치르는 美…북핵 문제 가용 역량 저하
전문가 "北 비핵화 포기는 곧 비확산 체제 포기…불가능한 시나리오"

19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개막한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지지 연설을 끝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손을 번쩍 들며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재선 의지를 중도 포기하고 대선 후보를 해리스에 넘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암울했던 시대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며 "이제 여름이다. 겨울은 지나갔다"고 강조했다. 2024.08.20 ⓒ AFP=뉴스1 ⓒ News1 정지윤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정윤영 기자 =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새 정당 강령(정강)에 '북한 비핵화' 표현이 빠짐에 따라 일각에서 미국이 향후 북한과 '핵 군축' 협상을 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21일 제기된다. '핵 군축' 협상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우리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민주당 전국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4년 정강 개정안'을 보면 이전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와 '북한 인권' 관련 내용이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이번 개정안엔 "북한의 도발에 맞서 우리의 동맹국, 특히 한국 편에 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북한 문제 대응을 위한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차 강조하고 한미일 3각 협력의 중요성도 언급하는 등 그간의 변화가 반영되긴 했다.

그럼에도 '북한 비핵화' 문구가 빠진 것은 미국 조야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시각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결렬 이후 '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 반응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고도화를 인정하고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가 아닌 '핵 군축'이 새 협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당국자는 지난 3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간 단계'(interim steps)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혀 국내에서 한 차례 파장이 일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이후 한미 정부가 나서 '사실무근'임을 밝히며 논란이 일단 봉합됐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새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 관련 문구를 빼면서 미국 내부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논리가 이미 주류화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미국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진 건 사실"이라며 "대다수의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한의 핵 능력을 억제하는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명백한 목표를 제시하고 협상에 임하느냐, 아니면 현 상황에서 '단계적'(주고받기식)으로 협상에 임하느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라며 "현재의 (미국 내의) 기류를 보면 자칫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News1 DB

이런 가운데 북한이 이번 민주당 정강 개정안을 '오독'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는 자칭 '핵보유국'인 북한이 오는 11월 대선 이후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경우, 핵 군축을 기본 입장으로 놓고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권을 강조해 온 민주당이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도 예상 밖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리며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다소 차이가 나는 모습으로 한미 간 '온도 차'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일련의 우려와 관련해 "한미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강은 이슈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모두 포함하지 않는다"라며 "앞으로 대선 결과 및 주요국과의 협의에 따라 구체화·가시화 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뿐만 아니라 지난달 공개된 공화당의 새 정강에도 '북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CVID), '북한 주민 인권 확립' 등 대북 관련 내용이 빠지면서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법의 큰 방향 자체가 바뀐 게 아니냐는 지적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이라는 '2개의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이 진전이 없는 북한 문제에 관심도가 하락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을 공식화하면 결과적으로 비확산 체제 자체를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며 "미국 내에서 (민주당 정강에 북한 비핵화가 빠진 것이) 기존 대북 정책의 중요한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