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민주유공자법 심사기준 모호…대통령 거부권 요청도 검토"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심사 거쳐 유공자 등록 가능"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야당 정무위 의원들은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가결했다. 2024.4.2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국가보훈부는 야당이 추진 중인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민주유공자법)이 유공자 등록을 결정하는 심사기준이 모호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보훈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법안의 거부권을 요청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희완 보훈부 차관은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민주화운동에 따른 '피해 보상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과 국가적 존경과 예우의 대상인 '유공자'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회 본회의 직회부를 단독으로 의결한 민주유공자법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이 아닌 6월 민주항쟁 등 다른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보훈부 심사를 거쳐 유공자로 예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유공자법은 법 적용 대상자를 '1964년 3월 24일 이후 반민주적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희생 또는 공헌이 명백히 인정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으로 규정했다.

민주유공자법에 따라 유공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민주화보상법'과 '부마항쟁보상법'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사망자와 실종자, 부상자 911명 등이다.

이 차관은 "법안 적용 대상에는 독재정권 반대운동, 교육·언론·노동 운동, 부산 동의대·서울대 프락치·남민전 등 다양한 사건이 포함돼 있다"라며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사건'인지, 관련자 중 어떤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결정할 지에 대한 심사기준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민주유공자를 결정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이어 "민주유공자를 가려낼 법률상 명확하고 구체적인 심사기준도 없이 보훈부에서 자체적으로 민주유공자를 결정할 경우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의 쟁송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기리는 안작데이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2024.4.25/뉴스1

보훈부는 민주유공자법이 국가유공자법과 달리 대상자 심의 기준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지 않으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의무사항이 아닌 재량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훈부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되면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보훈분 관계자는 "심사 과정에서 야당에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거부권과 관련해 협의가 필요하면 할 것이고 현재는 검토 단계"라고 전했다.

보훈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민주유공자 등록을 배제했고, 특혜 논란이 있던 취업·교육 등 실질적인 지원사항도 없다는 야당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민주유공자법은 25조 1항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을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4항에는 해당 사유로 민주유공자를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보훈부 관계자는 "국가유공자의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시 예외 없이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나, 민주유공자는 당연 배제가 아니다"라며 "'5·18민주유공자법'도 민주유공자법과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는데, 5·18민주유공자법의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유공자법안에 교육, 취업, 주택 대부 등의 조항은 빠져있지만 의료지원, 양로 등의 지원은 남아 있다"라며 "민주유공자 본인 및 자녀의 경우 국가보훈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입 특별전형 대상에 포함된다"라고 덧붙였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