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갈루치 "초구에 커브볼이…北 경수로 제안 예상 못해"
[외교문서 공개] 韓에 北 접촉 결과 공유 비화
"北, 경수로 제안은 김일성 구상이라고 설명"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30여 년 전 '1차 북핵위기' 때 북미 간 고위급 접촉에서 미국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핵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경수로 발전소 건설 카드를 던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29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 된 외교문서 2306권(37만여 쪽)을 주요 내용 요약본과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 중엔 1993년 3월 12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북미 간 실무 접촉 그리고 고위급 회담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미북은 그해 6월2일 각각 갈루치 차관보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고위급회담 수석대표로 각각 내세워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6월 4일과 10일, 11일 3차례 회의까지 마치고 북한 NPT 탈퇴 유보와 미국의 핵위협 우려 불식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한 언론발표문을 내놨다.
약 한 달 뒤인 1993년 7월 20일 갈루치 차관보는 당시 우리 주제네바대사와 약 1시간 동안 접촉하며 미북 고위급 회담 내용을 설명했다.
갈루치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북측은 경수로 관련 제안은 김일성의 구상이라고 하면서 현재 운용 중인 원자로와 건설 중인 원자로 및 핵무기 관련시설을 모두 폐기할 용의를 표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경수로 문제는 야구 경기로 비유한다면 초구에 들어온 커브볼처럼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며 "북측의 제안은 핵 비확산을 향한 진전(development)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본다"라고 우리 측에 설명했다.
또한 "북한이 문제가 되는 흑연로를 경수로로 전환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라면서도 "경수로 획들을 위해선 필요한 단계(step)를 밟아야 한다"라고 전제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NPT (탈퇴 철회) 등 국제 핵 비확산 체제 완전준수가 선행해야 한다"라며 △NPT 잔류 △전면적 안전조치 이행 △남북한 비핵화 선언 이행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미북 간 4차 회의의 공동 언론발표문은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의 초석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제네바 합의엔 △양측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시설을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한다 △미국은 2003년을 목표시한으로 총발전 용량 약 2000MWe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할 책임을 진다 △경수로 완공 때까지 매년 중유 50만 톤을 공급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대다수의 전문가는 북한이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핵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중수로 원전을 경수로 원전으로 대체함에 따라 북핵 위기 종식에 가까워졌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 이후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에 북한은 반발하면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후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재검토 대상'으로 전환됐고, 2002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인하며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자 2003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대북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의해 2년여간 공사가 멈췄다. 2년 뒤 경수로 사업은 완전히 중단됐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 규칙' 따라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검토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 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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