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간첩 혐의 한국인 '체포'…어수선한 한러관계 또 악재

전문가 "러, '스파이 혐의' 체포·추방은 상대국과 관계 악화 상징"

러시아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교도소. 이곳에는 한국 국적 백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금돼 있다. 2023.04.06.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러시아에서 우리 국민 1명이 간첩 혐의로 현지 당국에 체포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수선한 한러관계에 또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11일(현지시간) 사법기관을 인용해 간첩 범죄사건 수사의 일환으로 작전 수색 활동을 벌인 결과 한국 국적인 백 모 씨의 신원이 확인돼 그를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타스가 접촉한 수사당국 관계자는 백 씨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백 씨는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금됐고, 2월 말 수사를 받기 위해 모스크바 레보르토보 교도소로 이송됐다고 한다. 현재 모스크바 레보르토보 법원이 백 씨의 구속 기간을 3개월 연장함에 따라 오는 6월 15일까지 구금될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외교부는 12일 "현지 공관이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백 씨의 체포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구체 내용에 대해선 "현재 조사 중인 사안으로 언급하기 어렵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국영 매체를 통해 백 씨의 체포 사실을 공개한 시점을 두고 의문 부호가 붙는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측은 백 씨를 체포한 정확한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올해 초 구금, 2월 말 모스크바로 이송했다는 보도에 비춰보면 백 씨에 대한 수사를 개시한 지 두 달이 넘어서야 이를 공개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러시아 정부의 의도적 '언론 플레이'이자,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인질 외교'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특히 새해 들어 러시아는 대(對)한국 외교에 있어 '위협과 소통'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격을 가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주거용 건물에서 구조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AFP=뉴스1

러시아 정부의 '입'인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대변인이 한국을 향한 강경 발언을 지속하는 것은 '위협'의 사례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지난 1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자 "무모한 행동"이라며 한국 정부에 경고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핵 선제 사용 법제화' 비판 발언을 직접 겨냥해 "편향적", "혐오스럽다" 등의 표현을 동원해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는 외교적 결례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러시아는 동시에 한국과의 외교적 소통을 재개하려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은 지난달 초 한국을 방문해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을 비롯해 외교부 고위 인사들과 '릴레이 면담'을 가졌고, 장호진 국가안보실장도 따로 만났다.

이와 함께 올 1월부터 공식 활동을 시작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러관계 개선'의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를 두고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의 직간접적 군사지원을 막으려는 포석이 깔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백 씨의 체포 및 관련 사실 공개도 이러한 러시아의 의도가 깔린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 교수는 "이번 사안은 당연히 최근 한러관계와 연관이 있다"라며 "러시아는 스파이 혐의로 누군가를 체포 또는 추방함으로써 상대방 국가에 대한 불만 및 관계가 악화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러시아는 최근 한러관계의 회복과 관련 '한국이 하는 것에 달렸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동시에 비우호적으로 하면 앙갚음(retaliation)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 말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