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항소심 승소에 日 "유감"… 한일관계엔 어떤 영향?
일본 외무성 "국제법 위반… 한국이 적절한 시정조치 취해야"
"당장은 큰 영향 없겠지만… 국내 자산 현금화 땐 갈등 폭발"
-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우리 법원이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즉각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올 3월 우리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 급속히 개선돼왔던 한일관계에도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된다.
서울고법 민사33부는 23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배소 항소심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2억원씩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오카노 마사타카(岡野正敬)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윤덕민 주일본대사를 불러들여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유감"이라며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외무상 명의 담화를 통해서도 이번 "(한국 법원의) 판결은 국제법과 한일 간 합의에 위배된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가면제' 원칙이란 주권국가를 다른 국가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우리 법원은 앞서 1심에선 이 원칙을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그동안 우리 법원에서 제기된 관련 소송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지난 2021년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우리 법원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을 때도 일본 정부가 아예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서도 '무시' 전략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측의 국내 자산 압류 등을 통해 배상금 추징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일관계 경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고 위안부 피해자 측에서 국내 일본 측 자산 압류 및 현금화 절차에 착수한다면 한일 간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절차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한일관계의 "불안정 요소로 계속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최 위원의 지적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이번 판결이 "당장은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만일 국내의 일본 국유·공유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된다면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한일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올라온 상황인 만큼 양국 정부가 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번 판결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협의할지가 중요하다"며 "지금껏 양국 정부가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 관리를 잘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정부는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 위협에 따른 한일 및 한미일 간 공조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가미카와 외무상은 오는 26일 부산에서 한일외교장관회담에 임할 계획이어서 이 자리를 통해서도 이번 판결에 관한 사항들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 외교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상세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yellowapollo@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