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아직 남은 '반 컵'은 못 채웠다 [진창수의 일본읽기]

일본이 더 적극적 자세 보일 필요… 관망만 해선 안 돼
지금이라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진솔한 마음 전해야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서울=뉴스1)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 현재 한일관계 개선에 따라 양국 국민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양국 정부 간 불신도 줄어들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게다가 한미일 정상의 지난달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으로 3국 협력이 본격화되면서 한일 양국은 안보문제에서도 협력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이 가능해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다, 일본 또한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1년여 만에 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한일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를 보더라도 올 1~5월 일본에 간 한국인 관광객은 약 259만명으로 같은 기간 일본의 전체 외국인 관광객 863만명 중 약 29%를 차지한다. '도쿄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3분의1이 한국인, 후쿠오카(福岡)는 2분의1이 한국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 올 들어 5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66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19.2%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5명 중 1명 일본인이었단 얘기다.

최근 엔저(円低) 현상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겠지만, 이전과 같은 일제 불매운동과 반일 등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면 일본에 가는 걸 주저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한일 양국 간엔 여전히 불신도 남아 있어 한일관계의 '완전 복원'을 얘기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당시 볼 수 있었던 한일 양국의 친밀감과 열기, 한국이 일본을 응원하고 일본이 한국을 응원하던 열정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아 보인다.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당시엔 한국이 누구보다 먼저 일본을 지원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젠 과거의 추억이 됐다. 한국에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를 하면서도 불만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도 기대와 불안을 함께 갖고 있다.

한국인들의 불만은 올 3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올 3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이제 남은 반 컵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고 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서 일본 피고 기업들이 아직도 피해자들과 만나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는 걸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피고 기업이 피해자에게 진솔한 마음을 전한다면 한일관계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일보(一步)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일 양국이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타협책으로 만들기로 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도 불만족스럽긴 마찬가지다.

ⓒ News1 DB

일본은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한 강제동원 피해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내용과 규모는 너무 초라해 일본이 정말 미래에 대한 성의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그 진행 속도가 더딜 뿐더러, 그 규모(한일 양국이 1억엔씩 지원해 총 2억엔)를 놓곤 '서울 강남의 집 1채도 살 수 없다'는 비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반면 일본에선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나, 추후 한국의 정권교체 등으로 '골포스트'가 움직일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한국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하면 '한국이 또다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일본에선 윤석열 정부 임기를 마치고 정권이 현 야당으로 교체되면 '한국이 반일국가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 내 강경파가 '일본의 원칙을 굽혀선 안 된다'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불투명한 정치상황을 우려하기에 앞서 스스로 한일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일본 정부나 정계는 한일관계를 그저 '관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재임 중 한일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탄탄한 우호관계로 만드는 게 일본에도 득이 되지만, 오히려 지금 일본은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소극적 대응은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권 이후 정계에서 '더 이상은 반성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정착됨에 따라 쉽게 변화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그렇지만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선 일본이 더욱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 또 국제협력 분야에서도 한일 양국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한일관계의 앞날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 사도(佐渡)광산의 세계유산 등록 등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이 줄줄이 남아 있다. 이런 지뢰밭 속에서 양국은 전과 똑같은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한일관계 개선과 함께 양국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하지만 일본 입국 절차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를 간소화하기 위해 양국이 '교류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걸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에 대한 일본의 지지도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 엑스포는 2025년 일본 오사카(大坂) 엑스포와 연계해 한일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한국 학생들읠 일본 유학을 위한 일본 문부성 장학생 제도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관계가 나쁘다고 해서 그 규모를 20% 정도 축소한 일이 있다. 이후 한일관계가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숫자를 유지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아울러 이전 정부 시절 중단됐던 교류·행사를 재개하면서 더 많은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양국 모두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와 그 세부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