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유지' 대만, 중국에 종속된 한반도 피하는 길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美 지원 아래 동아시아·서태평양 국가들과의 합종책 추진해야
(서울=뉴스1) 백범흠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 유라시아 대륙 동부 연안에 위치한 중국은 실효지배 면적 960만㎢, 인구 14억2500만명, 국내총생산(GDP) 18조2000달러에 핵탄두 410여기를 보유한 초강대국이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은 적극적 긍정론부터 적극적 비관론까지 다양하지만, 그들이 세계 모든 나라, 특히 한반도 남쪽에 자리한 분단국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계속 영향을 미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무역·투자를 포함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원화와 중국 위안(元)화 간 환율 연동성이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고조선 이후 한족(漢族)과 비(非)한족을 불문하고 중국을 장악한 세력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나 한반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서한(西漢)의 고조선 침공, 수(隋)·당(唐)나라의 고구려 침공, 명(明)나라의 임진왜란 개입,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개입, 청일전쟁, 6·25전쟁 등 한반도에 대한 중국 세력의 무력 개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연평균 9.7%의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2010년경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증강된 국력을 바탕으로 태평양 방면으로는 '미국 세력을 서태평양에서 몰아내겠다'는 '도련선(島鏈線) 전략'과 '반(反)접근/접근 거부(A2/AD) 전략'을, 그리고 유라시아 방면으로는 동남아와 인도양·중동(중앙아시아)을 거쳐 유럽·아프리카로 진출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인도양 중요 항구를 연결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최종 목표가 '제2의 당나라', 즉 '중화민족의 꿈'(中國的夢想)을 이루는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음)다.
중국이 추진하는 도련선 전략과 A2/AD 전략의 핵심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한가운데 놓인 대만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만의 '현상'이 변경되면 남서태평양과 북서태평양이 양분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대만의 현상 변경은 미국엔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도 1차적으로 동남아시아를 거쳐 남아시아와 중동, 유럽으로 가는 해로(Sea Lane) 상실이란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현상 변경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남서부 해로 상실에 따른 운송비용 급증, 전략 에너지 수급 위기 등 경제안보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물론,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중국에 종속될 가능성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
미국은 이 같은 대만의 현상 변경이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태평양 전체에 대한 헤게모니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따라서 미국이 대만의 현상 변경에 동의하고 무기력하게 '제3도련선'(알류샨 열도와 미국 하와이·뉴질랜드 일대)로 후퇴하는 일은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 미국채 인기 하락, '석유 달러'(petro dollar) 핵심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반(離反),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의 확대(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집트·UAE·에티오피아·아르헨티나의 신규 가입) 등을 이유로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우리는 미국이 상대적 국력 약화 및 고립주의 추구를 이유로 대만이나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대만의 현상 변경 저지 등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상 유지'(status quo)를 추구하고, 유사 또는 동일한 경제안보적 이해관계를 가진 동아시아·서태평양 국가들을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종'(縱)으로 묶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미국의 지원 아래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1단계로 호주와 뉴질랜드, 2단계로 베트남, 3단계로 일본, 마지막 4단계로 캐나다까지 시차를 두고 묶어가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지정학적 배후지'(Hinterland) 국가로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기밀정보 동맹체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회원국이다.
또 베트남은 남중국해 도서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고, 특히 중국을 '역사적 숙적'으로 본다. 국제사회에선 베트남을 '떠오르는 용'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은 여전히 '세계 제3의 경제대국'이자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다. 미국과 함께 태평양 및 대서양으로 격리된 '세계의 섬'(World Island) 캐나다도 G7의 일원이자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이다.
반면 쿼드 협의체의 일원인 동시에 브릭스 회원국이기도 한 인도는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지정학적 자주성이 강해 협력 대상국이 되기 쉽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인도와는 '느슨한 연계'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염원해온 한미일 군사협력 심화가 특정 국가들의 반발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급변침(急變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일본과의 관계 또한 예단할 수 없다는 게 이 세계의 현실이다. 아울러 국력의 기초가 경제력임을 고려할 때 우리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인 중국과의 근린우호관계를 미리 악화시킬 필요도 없다.
'강대국의 흥망'(The Rise & Fall of the Great Powers)의 저자 폴 케네디는 "10~20년 뒤 누가 선두에 설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위험을 분산하고 손해를 줄여나가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정학적 혼돈 상황에서 한국은 합종책(合縱策)을 추진하는 한편, 은인자중하면서 국력을 키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와 함께 상황 변화를 주시한 뒤 민첩하게 행동하는 '이일대로'(以逸對勞)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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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백범흠 교수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연방행정원 행정학 석사,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한 뒤 2006년 경제외교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외무고시 제27회 합격 뒤엔 주중국대사관 총영사, 주다롄영사출장소장, 중국청년정치대 객원교수, 주프랑크푸르트총영사, 강원도 국제관계대사,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 사무차장을 역임했으며, 2023년 9월 현재 연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로 근무 중이다. 백 교수는 '미중 신냉전과 한국 Ⅰ·Ⅱ' '중국' '한중일 4000년' 등 7권을 출간한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