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이어 홍범도까지… 보훈부·국방부, '이념 논쟁' 한복판에

박민식 "장관직 걸고 공원 조성 막겠다"… 野 정치적 의도 의심
軍은 육사 이어 국방부 앞 흉상도 이전 검토… "업적 부정 아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28일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전했던 호남 출신 학도병들의희생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2023.8.28/뉴스1 ⓒ News1 김동수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추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우리 사회의 진영 간 역사·이념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이번 논쟁의 중심엔 저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부가 서 있단 점에서 그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28일 오전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호남 출신 학도병들을 위한 현충시설 건립계획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보훈부 장관이 대한민국의 '적'(敵)을 기념하는 사업을 막지 못한다면 장관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앞서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게 아니다.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은 한국전쟁(6·25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았다"며 광주광역시가 지난 2020년부터 추진해온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중단을 요구, 강기정 광주시장과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정율성(정뤼청·1914?~1975)은 일제강점기 광주 출신 음악가로서 1933년 중국에 건너가 항일 무장투쟁단체 '의열단'에 가입한 이력이 있다.

그러나 그는 1939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고, 1945년 광복 이후엔 북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만들었다. 정율성은 6·25전쟁 땐 중국 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으며, 1956년 중국으로 귀화했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공산세력에 죽임을 당했던 수많은 애국영령들의 원한과 피가 아직 식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미래인 학생들에게 '공산당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의 홍범도 장군 흉상.

보훈부에 따르면 정율성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엔 독립유공자 서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친북 행적을 이유로 결국 불발됐다고 한다. 그러나 광주광역시는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 일대에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하겠단 계획을 발표했고, 올 연말까지 이를 완공하겠단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1992년 한중수교 이듬해엔 정부 주도로 '정율성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그동안엔 그가 한중친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돼왔단 점에서 이번 정율성 공원 논란이 불거진 배경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보훈부는 지난달 '6·25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고(故) 백선엽 장군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내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 문구를 삭제하면서 한 차례 관련 논쟁에 불을 지핀 적이 있다.

육사 내 홍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둘러싼 진영 간 갈등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군 당국은 이날 육사뿐만 아니라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 앞에 설치돼 있는 홍 장군 흉상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임을 공식 확인했다. 군 당국은 그 연장선상에서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홍 장군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해도 독립군·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하는 게 결코 아니다"고 밝혔지만, 군 당국의 관련 논의를 두고는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 내 일각에서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27년 당시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홍 장군의 전력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 육성이란 육사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국방부의 설명을 두고는 "광복 전인 1943년 사망해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기회도 없었던 홍 장군에게 과도한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정율성 공원과 홍 장군 흉상 문제는 같은 선상에 놓고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 소식통은 "생도 교육 장소인 육사엔 북한과 맞서 싸운 영웅들을, 그리고 독립운동에서 공을 세운 영웅들은 독립기념관에서 기리도록 하는 등 각각의 장소에 맞게 기념물을 재정비하자는 취지"라며 "홍 장군의 업적까지 부정하면서 이념 논쟁을 펼치자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