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첫 유엔총회 연설… '北' 없었지만 대북 메시지는 담았다
직접 자극 피하면서도 '핵·WMD' '인권' 언급하며 우려 표시
도발 가능성 염두에 둔 듯 "국제사회 연대로 위협 극복해야"
- 장용석 기자,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장용석 노민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실시한 제77차 유엔총회 고위급 일반토의 기조연설에 예상과 달리 '북한'에 대한 명시적 표현을 담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거듭된 대화 제의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이른바 '강 대(對) 강' 기조 아래 재차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핵·미사일 개발 등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정치권과 외교가 등에선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다자외교의 꽃'이라고 불리는 유엔총회 데뷔란 점에서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 때부터 북한에 공개적으로 제안해온 이른바 '담대한 구상'의 일단을 국제사회에도 직접 소개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동시에 남북한 간의 정치·외교·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포함한 인도적 안은 북한과 항상 협력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중국·러시아 등의 건설적 역할을 재차 주문할 가능성이 있단 관측도 제기돼왔다.
특히 북한은 이달 8일 폐막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사실상 남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포함해 핵무력 사용조건·원칙 등을 명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란 법령까지 채택하며 핵도발 위협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린 상태여서 윤 대통령이 그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 전문을 보면 북한의 '북'(北)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연설문 말미엔 1950년 한국전쟁(6·25전쟁) 발발 당시 유엔에서 우리나라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유엔군을 파병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지만, 여기서도 '북한'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그간 북한이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히며 대화 제의에 일절 응하지 않아온 점 등을 고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면 그 초기 단계부터 대북 경제적 지원을 비롯해 상호 신뢰구축 등을 필요한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를 취해가겠다는 걸 말한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달 18일자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이 담긴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하나마나한 헛소리" "황당무계한 말" 등의 표현을 써가며 깎아내렸다.
북한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이 이명박 정부 시기 '비핵·개방·3000' 구상(북한이 비핵화·개방에 나서면 대북투자 확대 등을 통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내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남북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협력 사안에 관한 우리 측의 연이은 접촉 제의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 따르면 미 정부도 지난 7월 '뉴욕채널'(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한 대화 의사를 전달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 수행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담대한 구상' 발표에서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먼저 북한에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고, 북한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호응을 기다리겠단 뜻이다.
이 관계자는 또 윤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와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게 북한에 보내는 간접적 메시지"라며 "'자유에 바탕을 둔 국제사회와의 연대'란 거시적 메시지 또한 대북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 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며 "한 국가 내에서 어느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연대해 그 위협을 제거하고 자유를 지켜야 하듯, 국제사회에서도 어느 세계 시민이나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국제사회가 연대하여 그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윤 대통령의 연설 내용 가운데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 등이 바로 북한 정권의 핵개발과 주민 인권문제 등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단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이런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가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연설 내용에서도 올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요 우방국이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 측의 '반대'로 안보리가 추가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실패한 사실 등이 연상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 중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따른 동남아시아 주변국들과의 해묵은 갈등, 올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에 빗대어 쓰는 표현들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출발점은 우리가 그동안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축적해온 국제 규범 체계와 유엔 시스템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인류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다가서기 위해서도 유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등 국제사회의 역할을 거듭 주문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미국과 함께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제재 결의를 모색하는 동시에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떠오른 암호화폐 거래 및 해킹 차단 등을 위한 독자제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북한이 대화 제의에 응해올 경우에 대비해 미국·일본 등과 '담대한 구상'의 실행력 확보를 위한 '물밑 협의'도 이어가고 있다. 22일에도 서울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진행된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핵·WMD로부터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문제의식, 나아가 미국 등 자유를 중시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핵위협에 대응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해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윤 대통령의 이번 연설에 담겼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담대한 구상'은 비단 북한에만 한 얘기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제안이었다"며 "이번 총회에서 이를 다시 언급하진 않았지만, 비핵화 목표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인내심을 갖고 열린 자세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북한의 결단을 촉구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도 오는 26일 이번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선다. 연설자는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다. 북한 측은 그간 '대북 적대정책과 2중 기준 철회'를 대화 재개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해왔다. 여기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완화·해제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올해 유엔총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계속 이어가며 '핵보유국'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고 국제사회에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1991년 우리나라와 함게 유엔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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