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정녕 서울만이 답인가
소위 지방이라 불리는 경남 김해시에서 나고 자란 필자에겐 서울은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학창시절 교과서 너머로 배웠던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들, 수학여행 버스에 앉아 먼발치서 바라보았던 도심의 아름다운 진풍경들은 이상향을 향한 나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도 서울을 향해 입을 모으긴 매한가지였다. 벚꽃 핀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며 행복한 대학 생활을 즐기는 상상,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빌딩들 사이 번듯한 양복을 쫙 빼입고 출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일상생활마저도 서울 이야기만 한가득 귀에 들려왔다. 어느 날엔 서울에서 자취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떼를 쓰는 식당 옆 테이블 청년의 염원이 들려오는가 하면, 또 어느 날엔 서울 말고는 특별히 놀 데가 없다며 허심탄회한 불만을 토로하시는 어머님들의 수다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을 향한 우리의 갈망은 일상 속에 자연스레 파고들었다. 어느샌가 그곳은 우리에게 있어 한국판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다.
그렇게 서울에 대한 환상을 품은 필자는 마침내 상경을 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녹록지만은 않은 삶이 도사리고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진 지하철 역사,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만석인 지하철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저절로 쉬어질 뿐이었다. 출입문이 열리면 때마침 진풍경이 드러난다. 사람들로 꽉 채워져 우글우글 비좁은 틈 사이로 한 몸 욱여넣기도 버겁다. 객실 칸에 서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매 순간 진이 빠져있는 표정이었다. 숨 막히는 공간 속, 아득바득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중심을 잡으려 애쓸 때마다 필자는 늘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정녕 서울에서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정녕 서울만이 답인가?”
역사적으로 과거 조선 시대 ‘한양’의 시절부터 시작해 현재의 ‘서울특별시’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사회·경제의 집합체가 되었다. 이는 자연스레 전체 국토면적 중 12% 채 되지 않는 그 좁은 수도권에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 26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 일극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시도별 GRDP(2022년)의 전국 합산액은 약 2300조 원가량 된다. 그리고 이 중 수도권 GRDP만 해도 약 1230조 원 가량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체 수(2022년 기준) 또한 마찬가지다. 전국 사업체 약 600만 개 중 수도권이 약 300만 개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나 대기업의 경우(2022년 기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비율이 74%가량 된다. 오죽하면 해당 기준선 밑으론 취업하지 않겠다는 ‘남방한계선’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까. 이외에도 의료·교통·여가 등 대부분의 인프라 측면에서도 수도권은 비수도권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지방의 청년들은 이러한 수도권의 유혹 거리를 내팽개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2023년 11월)에 따르면, 2015~2021년 중 수도권에서 증가한 인구 중 청년층 유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78.5%가량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수도권 인구 유입의 대부분을 청년층이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마저도 지방의 인프라를 포기하고 수도권 인프라를 택했다. 이렇듯 미래사회의 주역인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계속해서 유입하게 된다면, 이는 곧 지방의 인적자본 유출로 이어질 것이다. 출산이 줄고 지역경제와 산업이 퇴화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필연적인 구조로 이끌릴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한 층 더 가속해, 청년들에게 있어 수도권에서 ‘살 수밖에 없다’라는 인식을 급격히 조성시킬 것이다.
반대로 수도권 또한 녹록지 않은 문제가 도사릴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그 많은 인구가 ‘무한경쟁’을 지속할 것이다. 교통체증은 당연하거니와 집값과 물가 상승은 물론, 일자리와 교육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매 순간 경쟁이라는 늪에 빠진 채로 허우적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실로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수도권과 지방 모두 지금과 같이 치명적인 악순환만 반복될 것이다.
그래도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상황을 마냥 내버려 둔 것만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을 이행해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균형발전 계획은 과거 1977년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발언은 물론,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2004∼2008년)부터 현재의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년)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 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수도권 집중이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등 정책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다.
이로써 필자는 위와 같은 상황을 ‘대한민국의 한 청년으로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해보았고, 국회와 정부에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한다.
첫째는, 지방중핵도시 건설이다. 이는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일본의 ‘중추중핵 도시’는 인근 지자체와 연계·협력하여 지역 전체의 경제생활을 뒷받침하고 도쿄권으로의 인구유출을 억제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지역이다. 우리나라 또한 이를 참고하여 대도시권인 대구, 부산, 광주 등 거점도시별로 특화된 분야에 대형 인프라를 집중하고 인근 부처별 연계를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 인프라를 확충해 지방 생활의 매력도를 높여야 청년들이 더 나은 정주여건을 보장받을 수 있고, 이는 자연스레 청년 인구 유치 및 지방대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2022년)의 제3차 '지역정착 이슈' 간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067명 중 53.8%가 ‘지방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지방소멸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와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자리 문제로 상경한 국민의 인터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등, 지방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만 존재한다면야 수많은 청년의 지방 거주 욕구를 사로잡을 수 있고,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y) 효과 또한 활성화해 더 경쟁력 있는 지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청년 정치참여 활성화다. 과거에도 그래 왔지만, 제22대 국회 또한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만 40세 미만 청년 의원은 단 14명(4.6%) 뿐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OECD 국가 중 청년 의원 비율 최하위권이다. 청년 유권자가 30% 넘게 달함에도 불구, 청년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의원의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심히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는 자연스레 청년보다는 기성정치인의 관점이 더욱이 투영된 국정 운영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청년은 청년이 제일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의 목소리를 최일선에서 경청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그런 청년 의원 비율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증대되어야 한다. 말씀드릴 좋은 제안이 하나 있다. 바로 청년정치를 활성화 해 지방을 ‘서울 성수동’을 모티브로 하여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성수동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업단지였는데, 도시정비사업으로 각종 팝업스토어 및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여가·문화 인프라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지역이다. 이는 곧 SNS 트렌드에 민감하고 여가의 대부분을 핫한 카페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 소비하는 현 청년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덕분에 성수동은 지역 내수경제 및 청년 유동 인구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지방자치적 관점에서도 위의 사례를 적극 참고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각기 다른 지역문화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에 걸맞게끔 지역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지역 내수경제를 살리고 청년 인구 유입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지사 당사자인 청년세대가 그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경청해줄 수밖에 없다. 더욱 더 효율적인 지방소멸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청년 정치 활성화가 현재로썬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국가를 잘 보살피어 주는 게 국회의 책임이자 의무 아닌가. 그러므로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소통과 합치의 장을 열어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즉, 미래사회를 드넓게 바라보는 국회로 거듭나길 간곡히 소망한다. 특히 이제는 국가가 지방소멸에 큰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국민을 위한 여러 해결책을 도모하고 이행해 나가길 바라는 바이다. 어쩌면 ‘청년’이라는 이유로 필자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잊힐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 필자의 목소리가 하나의 작은 날갯짓이 되어 지방소멸 해소라는 거대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으면 하는 상상을 하며, 본 칼럼을 끝마친다.
/황다성 24년도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
※청년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들의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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