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청년–지역살이–창업의 트릴레마
1. "하지 마세요."
2. "놀랍게도 전혀 없습니다."
학부 졸업 후 작년 말부터 온라인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청년 창업가 친구에게 창업을 추천하냐며 소감을 물었을 때 첫 번째 답변이 돌아왔다. 국내 수제맥주 브루어리의 양조사들께 청년이, 지방에서, 농업법인을 창업했는데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이 있었는지 여쭈었을 때 돌아온 답변이 두 번째였다.
그럴듯한 창업 지원 정책들과 벤처 강국 육성이라는 국가 차원의 일성이 무색하게 현실은 냉혹했다. 오히려 지금 내수에서 유니콘 기업이 어떻게 나오냐며 친구가 되물을 정도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업의 기회 자체는 예전보다 확대되었다. 근래 사회적 세태를 살펴보면 공직과 사기업을 막론하고 불만족스러운 처우와 불안정한 미래처럼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들려온다. 친구 역시 오히려 취업 전에 한 번 내 일을 해보자는 도전의식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소자본 창업도 용이해졌다며 사업 실패로 일가가 몰락한다는 건 옛이야기라 강조했다. 이러한 창업 기회 확대의 기저에는 사업 형태의 다양화 및 온라인 사업의 접근성 강화가 이유로 꼽혔다.
국가의 창업 지원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친구는 청년 창업의 대표자임은 물론,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 지역에 해당하는 파주에 사업장이 소재하여 창업중소기업 종합소득세를 5년 동안 100% 감면받는 중이다. 또한, 최근에 매출 기준점을 초과하긴 했으나, 창업 초기에는 국민연금 납부 또한 유예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비롯한 창업 컨설팅을 위시한 지원 정책 대부분의 활용 대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혁신적이면서 사회 공익에까지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국가가 원할뿐더러 현실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이나 AI, 데이터 분석처럼 정부에서 당대 역점 과제로 추진 중인 분야의 사업들이 보통 탄력을 받기 마련이다. 결국 요건에 맞춰 돈 타먹기 위한 요행으로 컨설팅이 귀결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창업 과정에서의 장애물이 많이 완화된 것은 분명한데 왜 창업을 쉽게 권하지 않는가?
본 질문에 관한 답은 두 번째 취재에서 더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ㅇㅇ 브루어리는 단순 양조장이 아니라 경기도 이천에서 선조들이 300년가량 지켜온 우리 땅을 보존하기 위해 시작된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측량까지 마친 토지가 개발업자들에게 매각되기 직전, 어디에나 있는 건물이 아닌 땅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진정한 의미의 수제맥주를 구현하는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고작 술을 만들고, 마시는 거에 거창하게 의미 부여해 홍보하지 말라며 코웃음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제맥주의 근본정신이 '지역성'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F&B 업종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과의 상생'을 비전으로 한국에서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들로 한 지역이 살아나는 성공 사례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이천 햇사레 복숭아를 사용한 맥주를 만들거나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어 식음료 분야 인재를 육성하는 등 지역에 스며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천 전통시장인 관고시장에선 시장 재료를 활용한 음료를 판매하며 지역민들의 사랑방 또한 꾸며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정 기조상 바람직해 보이는 '청년 농촌(지역) 창업'임에도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선 애로사항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책적 지원이 어려운 주류 업종이라는 한계가 첫째였고, 심지어 맥주는 우리나라 술도 아니기에 전통주의 범주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 분명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소멸 방지를 위해 농업 전후방 산업으로 청년 양성을 확대한다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천에 연고도 없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한 이후로도 소통의 장이나 정주여건 지원 등 실천된 부분이 없었다. 국내 재료를 사용하는 게 큰 이득이 없음에도 언젠가는 국산 재료만으로 탄생하는 맥주를 꿈꾸며 홉도 직접 기르고, 농촌의 매력을 타지에 가서도 전파하는 청년들에게 최소한 응원하고 있다는 성의 표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방에서 지역성을 살린 창업을 통해 지역 소멸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지역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은 이상일까, 공상일까? 조금만 더 궁리한다면 불가능할 일도 아니다.
첫째로, 지역 여건 분석을 선행하여 특화된 혜택을 구상해야 한다. 지자체끼리 서로 경쟁하듯이 세금을 얼마 감면해 주고, 무엇을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들은 지금도 넘치고 있다. 정작 놓치고 있는 각 지역의 여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원주는 항만이 없고 내륙에 있으니 비용이 많이 드는 물류를 지원할 수 있다. 또한 입주자가 없어 임대료가 붕괴된 지식산업센터들이 들어선 도시들에서는 취지에 맞는 기업들이 구미가 당기도록 중점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그저 보고서의 수치상으로 청년들이 유입되었고, 이만큼이나 기업을 유치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관료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혈세 낭비를 막아야 한다.
둘째, 청년 창업가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수많은 재고를 거쳐 나온 정책들이겠지만 국토도 좁고 인구도 적고 막대한 자본이 순환하는 내수시장도 형성되지 않은 한국에서 창업을 시도한 청년들에게 여전히 환경은 엄혹하기만 하다. 실례로, 창업한 친구는 "내 유일한 선생님은 유튜브와 커뮤니티"라는 명언을 남겼다. 보여주기식의 강사 초빙이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금융이나 부동산, 법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지역 대학교에서 필수 교양 교육을 제공하도록 연계하는 것이겠으나 이것이 어렵다면 청년 창업가 대상으로라도 실생활에 접목하여 지역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등에게 자문을 받도록 네트워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법과 세금에 따라 일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지사기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간과하기 쉬운 장벽을 낮추어준다면 청년들의 창업에 활력이 붙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셋째, 창업 지원 정책에 있어 관점의 유연한 전환이 필요하다. 수제맥주를 예로 들 때, 지금 대한민국에서 맥주 산업은 소관 부처나 확실한 법령 없이 두루뭉술 표류하고 있다. 그나마 전통주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우리술 대축제' 개최나 '찾아가는 양조장' 지정으로 도움을 주나, 맥주는 시작이 외국 술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이, 한국에서, 지역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도 각종 규제만 적용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맥주는 그 어떤 술보다 사회적인 주류로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공동체를 연결한다. 수제맥주를 관통하는 지역성이란 정신은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채 계승되었다. 취하려 마신다기보다 친구처럼 다가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맥주에도 전통주 대신 '지역 특산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지역 내에서 상부상조하며 함께 발전하는 틀 안에 품어주는 것이 어떨까. 또한, 아직 허가제를 유지 중인 신상 맥주의 제조 및 신고 과정은 현실과 과도하게 동떨어져 새로운 맥주를 만드는 게 두려워질 정도라고 양조사들께서 입을 모으기도 했다. 국민들에게 술 마시란 것을 권고할 수 없는 국가 입장상 여의도에서도 주류 산업이 쉽사리 조명받기는 어렵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굳이 맥주가 아니라도 토의와 숙고를 원하는 타 산업군의 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을지 쉽게 상상이 간다. 정책 입안자들이 시야를 넓혀서 사회 곳곳에 목소리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로씨행'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 CPA(공인회계사시험) - 행정고시(5급공무원 공개경쟁채용)'의 약자로 10명의 인문계열 학생이 있다고 하면 최소 7명은 세 가지 시험 중 한 가지를 준비한다는 식으로 진로가 편협해진 현 대학가를 자조하는 말이다. 그저 검증된 길이란 이유만으로 전문직이나 공기업 취직 등을 준비하는 것은 진취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향에 맞지 않는다. 하물며 고시 합격 대비 학원반으로 대학교 인문계열이 전락했다는 일종의 조롱까지 듣고 있자니 삶의 정체를 피하기 위해 하고 싶은 길, 즐길 수 있는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청년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무의미한 도움을 받고, 수도권 외 지역에서의 생활은 반쯤 실패로 취급받고, 창업은 비범한 사람이나 할 수 있단 시선을 받는 지금, 한 가지를 선택하기 꺼려지는 트릴레마 곁에서 남이 정해준 길로 많은 이들이 몰리고 있는 것 아닐까. 혼잡한 길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트리겠다며 당당하게 도전해 나가는 미래를 꿈꾼다.
/서준영 2024년도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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