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한다는데 [기자의눈]
- 박소은 기자
(서울=뉴스1) 박소은 기자 = 지난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혐의에 대한 1심이 선고됐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여야 모두에게 예상 밖 결과였다.
당초 공직선거법 1심 선고는 일종의 전초전으로 여겨졌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15일보다는 오는 25일 예정된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에서 이 대표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 15일 징역형이라는 뜻밖의 소식이 국회로 날아왔다. 여당은 크게 박수쳤고, 야당은 격노했다.
이 대표에 대한 호오를 떠나 이번 1심 선고는 대한민국에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 턱걸이를 하는 와중에, 제1야당 대표가 차기 정권을 창출하지 못할 수도 있는 법원 선고를 받았다. 여야 모두 각자의 최고권위자가 수렁에 빠진 셈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진행되던 중 여야 모두 품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1심 선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여당에서는 '사필귀정', '정의는 살아있다',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등의 논평이 쏟아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판사 겁박 무력시위 해봤자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오늘 확인하지 않았나"라고 호응했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현재 30%를 밑돈다. 최소 60%의 국민들이 현재 국민의힘의 모습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남의 초상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야당도 마찬가지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 파문으로 측근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구속되자 "이런 의혹으로 시달리지 않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데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고 몸을 낮췄다.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받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모든 허물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 대표는 위기를 맞자 되레 큰 소리를 냈다. 광화문에 뛰쳐나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이 나라의 주인은 윤석열·김건희·명태균으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도 '법원마저도 검찰의 정치 살인에 동조했다', '모순덩어리' 등 격렬한 발언을 내놨다.
분열의 언어고, 개인의 정치적 보신을 위한 발언들이다. 각계 각층의 지지와 이해를 구해야 하는 차기 대권주자의 품위에 걸맞은 태도인지 묻고 싶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한다고들 한다. 영웅은 위기를 타개하고, 그에 따르는 권위를 먹고 성장한다. 이재명 대표와 김건희 여사를 물꼬로 진행 중인 현재 정쟁에선 먹고 살 권위가 없다. 서로를 향해 악지르기만 하는 시장통에서 온건한 리더는 자취를 감췄고, 위기를 타개할 강력한 군주도 등장하기 어려운 탓이다. 각자의 악재를 보고 박수치기보다는 정치의 본질을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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