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방향 잃은 목숨들…정치는 어디에 [기자의눈]
- 문창석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사고는 문을 노크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난 7월 31일 경남 김해의 한 60대 화물기사가 작업 중 1.5톤 규모의 콘크리트 기둥에 깔린 건 오전 7시 36분. 그가 실제로 병원에 도착한 건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한 시점으로부터 55분 후였다. 구급대가 도착한 당시에는 상태가 양호했지만 병원 도착 직전에는 의식이 희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죽음은 "경남·부산 지역 병원 10곳을 돌며 1시간가량 치료가 지연됐다가 사망했다"는 건조한 인터넷 기사 한 줄로 다뤄졌다. 이들이 구급차 안에서 보낸 1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도 도로 위에서 방향을 잃은 목숨들이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집계된 '응급실 뺑뺑이' 사례는 1년 전보다 17% 늘었다. 응급실에 들어가도 문제다. 한 응급실 의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제 혼자 당직을 서는데 심정지 두 명, 뇌출혈 한 명, 뇌경색 한 명, 심근경색 의증 한 명이 1시간 내에 왔다"며 "5명 다 살아나긴 했는데, 그분들은 운이 좋아 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운이 있어야 응급실에 가고, 의사에게 진료도 받는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책임일까. 일부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등의 조정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키우려 하는 여당, 당정 갈등을 비판하며 양쪽을 견제하는 야당, 타협의 여지 없이 2000명이란 숫자를 고수한 대통령실, 이들의 조합은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지속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타협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라면, 지금 정치는 과연 가동되고 있는 것일까.
의대 정원 문제를 회담에 공식 의제로 올리지 못한 여야 대표는 지난 1일 국회 차원의 대책 협의와 추석 응급관리 체계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는 데 합의했다. 여당 대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만 용산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지켰고, 야당 대표는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회담에 올린 절묘한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국민의 생명 앞에서 그런 정치공학은 부차적인 문제다. 지금도 도로 위를 떠돌아다니는 목숨들 앞에서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 내놓은 해답이 고작 '대책 협의'와 '당부'뿐이라는 사실과 "비상 진료체계가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 중 어느 쪽이 더 비현실적인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한 달 전 어느 날 밤. 안방에서 먼저 자고 있던 나는 거실에 있던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픈데, 목소리가 안 나오고 도저히 안방까지 걸어올 수도 없어서 전화했단다. 급하게 부른 119 구급대원이 15분 거리의 종합병원으로 내달렸고,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응급실에 접수하는 동안 구급대원이 말했다. "그래도 전화 3번 만에 바로 왔으니 운이 좋은 편이에요."
안심시키기 위해 가볍게 던진 줄 알았던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보름 후였다. 여당의 한 원로 정치인이 이마가 찢어져 응급실에 가기 위해 전화를 22번 했는데도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운이 좋아서 아내가 살았음에 기뻐해야 하는 걸까. 운이 없는 원로 정치인을 보며 그나마 나는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하는 걸까. 정치는 오늘도 가동된다. 국민의 목숨을 운에 맡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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