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문화 자산 안보를 위한 문화예술법안의 미래 가치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나는 두말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1051만이 관람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의 한마디가 과거 예인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죽으라면 길바닥에서도 죽는시늉을 해야 했던 그 시대의 예인들은 최소한의 권리라곤 없는 천민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봉건시대에서 예술인은 사람 자체가 한낱 유희거리였습니다. 예술인의 공연과 작품을 몇 푼의 돈을 주고 누린다는 의식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지난해 대중의 사랑을 받던 예술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며칠 동안이나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예술인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기저에는 아직도 예술인을 한낱 길바닥 딴따라로 보고 있는 전근대적인 시각과 제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슬프게도 2024년, 지금 이 순간에도 전근대적인 시각으로 예술과 예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예술인들의 밥줄을 쥐락펴락하며 자신들의 정치 지향점과 맞지 않은 자들을 핍박했던 자들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20년, 30년 업계에서 잘 커오던 회사가 불과 3~4년 만에 주저앉았습니다. 잘나가던 제작사가 투자를 단 한 건도 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좇던 예술인에게 꼬리표를 붙였던 것입니다.

예술인의 기본법인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그들의 울타리가 돼주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의 탄생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유입니다.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원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에 의한, 예술인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많은 현장 예술인, 창작자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현장인과의 소통을 의정활동의 맨 앞에 놓고 있습니다. 당사자성이 없는 정책과 제도는 현장에서 외면받기 때문인데요. 종사하는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을 만나면 듣게 되는 공통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불공정'입니다.

문화강국 코리아를 외치지만 이를 관통하는 한 단어가 '불공정'이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문화산업이 큰 그릇이라면 예술인과 창작자는 그 그릇을 채우는 물입니다. 문화산업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행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된다면 그릇 안의 물은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앞으로 문화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입법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표준계약서입니다.

프리랜서의 비중이 높은 예술인들이 계약관계에 있어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표준계약서를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영화, 대중문화, 만화, 방송, 출판 등 16개 분야, 86종의 표준계약서가 그것인데요. 문제는 현장에서의 사용 여부입니다. '백약이 무효'이듯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강유정의 1호 법안'이기도 한 '표준계약서 5법'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사업자에 대한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해 예술인들의 고용안전망을 좀 더 두텁게 하고자 했습니다. 더하여 2014년 10월 제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정을 하지 않은 영화상영 표준계약서 등에 대해 영화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개정 필요성을 주무부처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또 다른 관심은 우리의 중요한 미래 문화 자산인 게임 콘텐츠입니다. 게임 산업은 나날이 성장해 현재 우리 콘텐츠 산업 수출액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청소년들의 오락거리 정도로 여겨졌지만 현재 게임은 세대 간 교감을 나누는 매개로서 새로운 여가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나쁜 것',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치 소설이 처음 등장하던 시절 영혼의 독이라며 금지되었듯이 게임에도 오락성과 사행성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겁니다. 무분별한 방식의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막기 위해 통계법을 개정하고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를 통해 공정한 게임 생태계와 게임 이용 환경을 조성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숨 가쁜 변화 속에서 미래 문화 자산 보유국으로서 국제 기준이 우리 게임 및 콘텐츠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문화 자산 안보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우리의 'K-콘텐츠'는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문화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루어져 있다면 현재 우리는 BTS와 오징어게임 그리고 기생충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웹툰, 영화, 방송, 음악 등 외국인이 열광하는 분야도 다양합니다. 수치로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2022년도 콘텐츠산업백서'에 따르면 K-콘텐츠산업 수출은 124.5억 달러('21년)입니다. 이는 가전제품(84.2억 달러), 디스플레이 패널(36억 달러)을 추월한 것으로 그야말로 문화산업의 '화양연화'라고 할 만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K-콘텐츠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강한 문화산업 생태계가 필수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 자산입니다. 미래의 자산은 현재의 투자와 관심 지원을 통해 수확할 수 있을 결실입니다. 신진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줄어드는 걸 걱정하고 이에 대한 법률적 방어막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발전기금은 단순히 영화 푯값의 3%인 450원이 아니라 미래 문화 자산에 대한 최소투자로 보는 게 옳습니다. 게임을 아이들 놀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문화로 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K-pop을 국위선양의 도구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팬덤과 사용자까지 살피는 입체적 법률과 시선도 필요합니다.

제22대 국회의원으로서, 문화 예술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예술인의 권리보장과 공정한 유통환경의 토대 마련에 앞장서겠습니다. 그것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갖춘 진정한 문화강국을 위한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