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 사법부에 셀프 목줄…정치 증발에 고소·고발 '제살깎기'
여야, 개원 두 달새 고소·고발 남발…윤리위는 개점 휴업
'정치의 사법화' 급페달…"정치권 스스로 입지 갉아먹어"
- 서상혁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22대 국회 초반부터 극심하게 대치 중인 여야가 하루가 멀다하고 고소·고발을 주고받고 있다. 최소한의 자정 기능을 담당하는 국회 윤리위원회는 가동조차 못하고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도 사법부 판단에 맡겨 입법부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고, 여의도 정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서 불거진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청탁과 관련해 나경원 의원을 청탁금지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동훈 대표의 '댓글팀' 의혹에 대해서도 공수처에 고발했다.
지난 26일엔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 불출석한 증인을 고발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정 위원장은 지난 19일에도 몸싸움을 벌였던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다.
야당의 고소고발 공세에 국민의힘도 판박이 대응으로 맞불을 놓는다. 국민의힘은 검사 네 명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고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을 이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 의혹을 보도한 JTBC 기자를 방송사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여야간 법적 다툼이 빈번해지는 배경으로는 거대 야당이 의석으로 압박하고 여당이 단체 행동을 맞받는 대치 정국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의원들 사이에선 국회 만큼이나 경찰서 갈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필리버스터, 탄핵 같이 정당으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도 일상화되는 양상이다.
모 초선의원은 "국회의원인들 고소와 고발이 무섭지 않겠나"라며 "워낙 국회 상황이 꽉 막혀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고발하면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지는데, 이같은 주목을 끌기 위해 더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며 "서로를 향해 법적 대응을 남발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고소고발 난타전은 자정 기능을 담당하는 국회 윤리특위의 공전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윤리 강령 등을 위반한 국회의원의 자격심사나 징계를 심사하는 기구로, 국회의원 자격 박탈까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석 수에 관계없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밖에 없어 그간 막말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킨 국회의원에 대해 의미있는 징계를 하지 못했다. 이번 22대 국회에선 위원회 구성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다.
여당 관계자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 같은 당 의원이 윤리위에 회부되면 강한 징계를 내리지 못한다"며 "윤리위 회부한다 해도 의원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고소나 고발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회 들어 '정치의 사법화'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가, 외려 사법부에 기대면서 스스로 입지를 깎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으로 대표되는 여의도 정치가 붕괴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이유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인데, 모든 걸 법원에서 해결할 것이면 정치는 왜 필요하겠나"라며 "(고소·고발 남발은) 정치인들이 서 있는 땅을 스스로 줄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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