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대선판 최대 변수로…진상규명 촉구 與野 '동상이몽'
확진자 투표서 부실관리 실태 드러나…여야, 선관위 한목소리 질타
與, 선관위 100% 책임 강조하며 선긋기…野, 마지막 사흘 지지층 결집 사활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사전투표에서 일어난 코로나19 확진·격리자의 투표 부실 관리 사태가 대선을 사흘 앞둔 대선판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선거 담당 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한목소리로 질타했지만 사안을 받아들이는 속내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중앙선관위는 "불편을 드려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면서도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6일 중앙선관위와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사전투표 마지막날인 지난 5일 오후 5시부터 시행된 코로나19 확진·격리자의 투표 과정에서 부실 관리 행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코로나19 재택치료자 수는 전날 0시 기준, 102만5973명이었다. 이들중 일부는 투표에 참여했지만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바로 넣을 수 없었다. 대신 용지를 쇼핑백이나 종이상자, 바구니 등에 넣었고 투표사무원들이 다른 곳에 마련된 투표함으로 이동해 직접 투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투표지는 기표 후 그 자리에서 기표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157조 4항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진행 요원들이 이들의 표가 담긴 봉투를 바구니나 종이상자, 쇼핑백 등에 담아 옮기는 모습의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서울 은평구 신사1동 투표소에서는 확진자인 유권자 세 명에게 건네진 투표 봉투 안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기표한 기표지와 빈 투표용지가 함께 쥐어졌다.
서울 서초구 서초1동 투표소에서는 투표 참관인이 감염 우려를 이유로 참관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방역전문가들은 투표용지의 감염 우려가 없는데도 왜 이같은 방식으로 표를 수거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역삼1동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확진자 박모씨(34)는 "이곳에서 확진자는 투표할 때 투표용지에 기표를 한 뒤 봉투에 넣고, 방호복을 입은 직원에게 전달하면 직원이 이것을 수거해 갔다"며 "확진자, 격리자들은 투표해도 자신의 표가 투표함에 들어가는지조차 확인할 수도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역에서도 부실 관리 실태 제보가 잇따랐다. 대전 가수원행정복지센터 투표소에서도 확진자와 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고 선거 종사원에 전달해 논란이 일었다.
부산 해운대구의 한 확진자용 임시기표소는 창고같은 공간에 마련돼 논란이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확진자들은 전날 강풍을 동반한 추위 속에서 원활하지 않은 투표소 관리로 1~2시간 넘게 기다리다 투표를 마쳤는데, 이 중에는 쓰러진 사람도 확인됐다. 일부는 기다리다 투표를 하지 않고 불만을 터뜨리며 귀가하기도 했다.
이번 사전투표 논란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칫 지난 2020년 4·15 총선에서 발생한 '부정선거' 논란이 헛된 주장이 아니란 점을 방증하면서 선거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당장 대한변호사협회는 "직접투표와 비밀투표라는 민주주의 선거의 근본원칙을 무시한 이번 사태가 주권자의 참정권을 크게 훼손하고 전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이번 선거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높은 참여 열기와 투표관리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하여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며 "불편을 드려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21대 총선과 4·7 재·보궐선거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선거일 자가격리자 투표를 진행했다"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하여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야는 한 목소리로 중앙선관위를 질타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 "코로나19에 확진된 분들이 투표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편을 겪으셨다고 한다. 참정권 보장이 최우선"이라며 "본투표에서는 확진자의 불편과 혼선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선관위 이게 뭐냐, 코로나 확진자 및 격리자 사전투표 부실관리에 대한 입장표명도 왜 이렇게 불성실하냐"며 "이것을 해명과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나, 어디가 고장이 난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종이상자나 사무용 봉투, 심지어 쓰레기봉투에 투표용지를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를 주기도 했다니 매우 실망스럽다"며 "코로나 확진자와 격리자 사전투표 관리는 몹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앙선관위가 철저히 준비했다면서 어제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에 우리 당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사고로 보고 있다"며 "진상규명 후에는 책임을 단단히 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질타는 더 거셌다.
윤석열 후보는 페이스북에 "코로나19 확진·격리자분들의 사전투표에서 발생한 혼선,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로 드러났다"며 "정부와 중앙선관위는 엄중한 책임 의식을 갖고 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선대본회의에서 "독립헌법기관인 선관위는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관보다 엄중하고 사려깊은 처신이 요구됨을 명심해야 한다"며 "중앙선관위는 확진자 등 사전투표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전체적으로 책임질 인사의 즉각적인 거취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전대미문의 혼란이 있었던 점이 확인됐는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시되는 투표가 맞는지 엉망진창이었다"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웅·김은혜·유경준·이영 국민의힘 의원 4명은 전날 오후 9시40분쯤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만난 이들은 이번 의혹으로 직접투표·비밀투표 원칙이 무너졌다면서 "불법선거가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여야의 속내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이 중앙선관위에 확실한 선을 그으며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는 데 주력한다면, 국민의힘은 지지층 결집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사전투표에서도 본투표와 마찬가지로 투표 시간 연장(오후 7시30분까지) 주장을 하루종일 했다"며 "그런데도 선관위는 철저히 준비했다면서 반대를 했고 결국 선관위 방식대로 진행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100% 선관위 책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거리유세에서 "저를 믿으십쇼"라며 "(사전투표 논란은) 제가 사기꾼을 오래 상대해봐서 아는데 우리 국민의힘 지지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려는 작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당에서 철저히 감시하고 정권이 바뀌면 그 경위를 철저히 조사할테니 걱정마시고 3월9일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앙선관위 위원 대부분이 대통령과 대법원장, 민주당이 지명한 사람들이고 선거 주무부처 장관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사전투표 논란이 발생했다면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있다면 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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