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거 해외 파병 사례는 어땠나…'폭풍군단'과의 차이는?

北 특수부대 '폭풍군단' 러시아에 파병 시작
베트남전부터 파병 역사는 지속…'전투' 보다는 '지원'에 방점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한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1만 명 이상을 계획으로 대규모 해외 파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번 '대규모 지상군 파병'은 그 규모와 유형이 이례적이기 때문에 국제 정세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군의 첫 해외 파병은 베트남 전쟁 때였다.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고 다음 해 한국도 파병을 결정하자, 북한은 각종 군수 물자와 함께 군 병력 수백 명을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에 파견했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가 2011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북한 전투기 조종사 87명은 북베트남에서 미군 전투기 26대를 격추시키는 성과를 냈다. 또, 북한 심리전 요원 100여 명은 파병된 한국군을 상대로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의 라디오 방송을 제작해 퍼뜨리고 투항 권유와 포로 심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한은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 군사교관단·군사고문단 등을 파견하는 식으로 간접적인 참전을 지속해 왔다. 북한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의 교육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교관단을 파견했다가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전쟁 말미에는 전투기 조종사를 투입했다.

1984년 리비아에서 일어난 반(反) 카다피 시위 때는 북한 군사고문단 25명이 동원됐으며, 1987년 우간다에 군사교관단 50여 명이, 2014년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특수부대 30여 명이 파견된 바 있다.

그러다 2016년 시리아 내전 때 처음으로 북한 지상군이 파병됐다. 북한은 미사일 기술자와 함께 '철마-1'과 '철마-7'로 불리는 2개의 전투부대를 시리아에 보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우리 정부 분석에 따르면 부대당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매우 소규모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전투 수행을 위해서라기보다 동맹국을 챙기는 지원에 더 방점이 찍힌 셈이다.

이런 과거 사례와 비교했을 때 이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규모와 전투력 측면에서 모두 전례가 없다. 현재 북한은 최정예 특수부대인 '폭풍군단'(11군단) 소속 1500여 명을 이미 러시아에 보냈고, 순차적으로 총 1만 2000명을 파병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의 특전사령부와 유사한 폭풍군단은 적진 침투와 교란, 주요 시설 파괴 작전이 특기다.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을 일으킨 124부대를 모체로 하며, 이후 다른 특수부대들과의 통합을 통해 지금의 형태가 완성됐다.

북한은 지난 6월 신조약에 기반한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하는 이번 조치를 통해 더욱 '북러 밀착'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이번 파병을 통해 북한이 △군사 위성 지원 및 방공 시스템 구축 △항공모함 및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 △극초음속 미사일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등 다양한 지원을 러시아로부터 받을 길이 열려 한반도 정세가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과거 한국이 베트남에 파병했을 때 미국으로부터 큰 원조를 받은 것처럼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유의미한 지원이 있을 것"이라면서 "나아가 북한이 직접 현대전 경험을 쌓음으로써 앞으로 더 강화된 대남도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된다"라고 예측했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