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남북 2국가 수용, 北에 동조하는 꼴"…반대 의견 우세

"유사시 무력 점령하겠다는 '적대적 두 국가론'에 동조한 셈"
"'통일' 유예 후의 계획도 있어야…장기적 관점 지켜봐야"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9.19/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임여익 기자 =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남북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임 전 실장은 전날(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화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통일하지 말자.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돼 있는 헌법 3조에 대해서도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며 "남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 사회에서 각각의 독립 국가로 주권을 행사하는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그러면서 "제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이 대전제되면서 적극적인 평화 조치와 화해 협력에 대해 거부감이 일고 소모적인 이념 논란이 지속된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임 전 실장의 주장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남북통일에 '비현실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과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두 국가론'의 의미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단순히 '두 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하고 있다"며 "올해 2월 9일 건군절에 김 총비서는 '한반도 유사시에 무력을 사용해 대한민국을 점령하는 영토 완정이 국시'라고 밝혔는데, 이는 평화·공존이 아닌 무력 점령의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임 전 실장이 평화·공존을 위해 이런 노선을 주장한 것이라도 (우리가 두 국가론을 수용한다면) 한국을 유사시 무력 점령하겠다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동조하는 형태가 되면서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두 국가론은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정체성, 그 틀 자체를 지워버리는 주장"이라며 "합리적이고 적절한 분단 관리 매뉴얼도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명백히 눈앞에 보이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관리할 수 없게 된다"라며 '두 국가론' 수용이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도 "북한이 남북관계 합의를 무효화하고 대남노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맞춰 우리도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로 가야 한다는 논리구조로 읽혀 질 수 있다"라며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고 치열한 국제정세 속에 국익에 기반한 외교안보를 가져가야 할 시점에 오히려 각계의 비판과 남남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평화'와 '통일'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평화 통일'은 70여년간 추구해 온 헌법적 가치인데, 지금 당장 통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버리면 추후 조건이 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법적 근거가 아예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평화 통일' 의무에 대한 선서를 한다"며 "방식과 상관없이 '통일'만 달성해서는 안 되고, 한반도 '평화'만 유지되면 통일은 안 해도 상관없다는 식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둘 다 추구하는 것이 더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영토 조항이 있는 헌법 3조와 평화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4조는 상충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다"며 "만약 지금의 형식적 논리로 접근해 개헌을 한다면 헌재의 결정에도 어긋난다"라고 부연했다.

양 총장도 "대안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에서 통일은 빼고 평화만 하자는 것은 오히려 영구분단론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라며 "통일을 버리고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으로 나간다고 할 때 북한이 화해협력으로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국제적 불법행위인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통일안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 군인이 외부를 주시하고 있다. 2024.1.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다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이라는 전제에서 한 번은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일에 대한 논의는 현실성과 당위성 두 가지 측면으로 나뉘는데 그 중 당위성의 측면에서 보면 '통일이 정말 필요하다'라는 컨센서스가 있다기보다 오랜 시간 학습된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70년 동안 통일이라는 고정값으로부터 생겨나는 갈등의 씨앗이 너무 많았다"며 "(임 전 실장의 주장은) 그동안 통일이라는 전제를 오랜 시간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 세대는 통일의 당위성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고 그 기저에는 현실성의 측면이 깔려있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통일했을 때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적인 불안정성·불예측성을 감당하기 싫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탈북자 문제나 북핵 문제는 언제까지나 한국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외교적,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또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