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UPR 충분히 활용해야…'가족 강제 분리' 문제는 '인권침해'"

신희석 국제법 전문가 인터뷰…"국제기구 통해 北 책임 물어야"
"UPR 1~3차에 '억류자' 언급 한 번도 없어…권고 수 늘려야"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이 12일 서울에 위치한 TJWG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9.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씨는 2013~2014년 북한에 억류되어 생사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98년 14세 때 탈북한 김철옥 씨도 지난해 10월 강제 북송되고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이들의 가족은 약 4000일을 우리 정부와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며 살았다. '남북 관계 정상화'를 기반으로 한 기다림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지 못했다.

한국에 남은 가족들에게 한반도 분단의 현실은 곧 '가족 분리'의 문제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이 같이 살 권리 또한 지켜져야 할 인류 보편적 가치지만, 이들은 현재 북한의 일방적 거부로 가족과 '강제 분리'됐다. 이러한 인도적 관점은 국제적 관심과 권고를 이끌어 내기에 꽤 유용하다. 최근 정부와 민간단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북한에 법적 책임을 권고하기 위한 자구책을 찾고 있다.

북한의 인권 침해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온 국제법 전문가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 12일 추석을 앞두고 만난 신 분석관은 "국내에서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북한이 정말 듣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을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문제제기를 해야 (북한이) 좋든 싫든 듣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이 12일 서울에 위치한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올해 10주년을 맞은 TJWG는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계기로 2014년 9월 서울에 설립된 비영리 인권조사기록 단체다.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자행되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를 조사하기 위해 COI를 설립했다. 2014년에 발행된 COI 최종 보고서는 최초로 유엔 상설기구 차원에서 시행된 북한 인권 문제 조사 결과다. 보고서의 핵심은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는 권고가 들어간 부분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의 인권 실상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신 분석관은 "우리나라는 70년 넘게 북한을 상대해 왔지만 사실 다른 나라들은 첨예한 국익이 연관되지 않는 이상 북한을 잘 모른다"며 "따라서 의제 설정에 주도권을 가진 주제네바 유엔 각국 대표부를 설득할 수 있는 자리에 찾아가 북한 관련 이슈를 권고해달라고 요청하는 '맨투맨' 외교가 중요해졌다"라고 강조했다.

◇ "UPR에 효과적인 '발품' 설득…이번엔 억류자 문제 언급해야"

신 분석관은 국내 인권 단체들과 함께 지난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UN)의 '보편적 인권 정례 검토'(UPR) 사전 심의(프리세션)에 참가했다. 각국 제네바 대표부를 상대로 오는 11월 7일에 열리는 제4차 북한 UPR의 주요 쟁점과 검토안을 건의하기 위해서다. 북한에 억류된 선교사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씨와 강제 납북자 김철옥 씨의 실명을 UPR에서 언급하며 생존을 파악할 수 있도록 권고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UPR은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만들어진 '유엔 인권 감시 시스템'의 3가지 주요 메커니즘(조약기구, 특별 절차, UPR) 중 하나로, '보편적 인권 지수'(UHRI)를 만드는 지표로 사용된다.

신 분석관에 따르면 '북한 UPR'은 민간 비정부기구(NGO)들의 '발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리다. 일례로 지난 2019년 열린 제3차 북한 UPR 때 아이슬란드가 1969년 대한항공(KAL) 납치 사건 당시 피납된 한국인 황원 씨를 포함해 납북되어 송환되지 못한 승무원과 여객을 즉각 송환하라고 북한에 권고한 사례가 있다. 아이슬란드 인구는 서울 인구의 3분의 1 수준으로, 대한민국 대사관도 없는 나라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황원 씨의 아들이 당시 제3차 UPR 프리세션이 열렸을 때 피해 당사자 가족으로 회의에 참석해 당시 사건을 주제네바 대표부들에 미리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한국과 이해관계가 없던 나라들까지 당시 우리나라 정부도 하지 않은 권고를 냈다.

"올해 1월에 열린 중국 UPR 같은 경우는 워낙 다루는 사안이 많다 보니 각국 발언 시간이 약 45초 정도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미국과 독일은 그 시간 동안 8개의 권고를 했어요. 근데 북한 UPR은 발언 시간이 약 1분 20초에요.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4개 정도밖에 권고를 안 했죠. 북한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 약 2배의 시간이 주어져도 그만큼 권고를 안 한다는 게 아쉽죠. 이건 결국 의지의 문제에요."

신 분석관을 비롯한 인권 전문가들은 이번 UPR에서 선교사들의 실명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억류자 문제를 반드시 권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일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차 UPR에서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 국민이 북한에 억류된 문제에 대해 한 번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현재 북한에는 한국 국적의 억류자들만 있는 만큼 결의안에서 '다른 회원국 시민'이 '한국 국민'으로 명시되어야 하고 생사 확인과 소재 파악, 석방을 촉구하는 내용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또 '영사접견법'도 거론하며 "미국과 캐나다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었던 자국민 영사접견 및 석방을 위해 제3국인 스웨덴을 이익보호국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에 체포돼 억류 중인 한국인 선교사 김정욱 씨. (YTN 화면) 2014.2.27/뉴스1

◇ "북한도 부담 없이 얼굴 드러내는 자리…정부도 적극 활용해야"

"남북 채널은 대부분 비공개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개적으로 북한 외교관을 바로 앞에 두고 다른 국가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받으며 얘기할 수 있는 건 UPR밖에 없어요."

신 분석관에 따르면 유엔의 인권 권고 절차 과정에서는 해당 주제와 관련한 각국 인권 전문가들이 초청된다. 유엔은 전문가들이 제네바에 위치한 사무소에 오기 위한 교통비, 숙소비를 포함한 기본적인 출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이들이 내는 권고안들은 날카롭고 구체적이다.

반면 UPR 당일 자리에는 정부 대표들이 참석하기에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 내용이 오간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 마나한 권고', '엉터리 권고' 등이 등장할 때가 있다고 신 분석관은 전했다. 유엔 193개 회원국에는 독재 국가들도 있는데 이들은 북한에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라" 정도의 애매한 말만 하고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 대표부가 UPR에 큰 부담 없이 참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규모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이 엄격하지 않은 UPR을 우리도 역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신 분석관의 주장이다.

"UPR은 4~5년에 한 번 하기 때문에 사실 전반적인 인권 상황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게 맞긴 맞아요. 근데 개별 국가가 권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막을 수도 없어요. 유엔이 그렇게 규정을 해놨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게 되는 거죠. 반드시 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만큼, 정부가 됐든 NGO가 됐든 피해자가 됐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UPR 수검 국가를 대상으로 제출할 수 있는 '사전 서면 질의서'도 충분히 활용하면 북한의 답변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UPR 개최 한 달 전 서면 질의 내용을 제출하면 다음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가 열리기 직전인 2월 말까지 북한은 질의에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인권이사회 회의가 열리는 3월에는 UPR 보고서 채택 순서에서 북한이 개별 권고 사안에 대해 몇 개를 수용했는지 공개된다.

통일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차 북한 UPR(2009년)에서 북한에 표명한 전체 167개 권고 중 '이산가족·납북자·국군포로' 관련 권고 수는 2개(2개국), 2차(2014년)에서는 전체 268개 권고 중 3개(3개국), 3차(2019년)에서는 6개(5개국)로 집계됐다. 늘어나는 추세로 보이긴 하지만 해당 문제에 대한 각국의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인권 외교가 같이 성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산가족 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체 이산가족 신청자 총 13만3984명 중 9만4391명이 사망, 3만9953명 만이 생존 중이며 8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이 약 65.4%에 달한다. 2024.2.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이산가족' 용어 대신 '강제 분리 가족' 고려해야

신 분석관은 대학 시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로 한 학기 교환 학생을 다녀온 것이 '법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위치한 '국제법'의 메카에서 공부하면서 '인권'에 주목하게 됐다. 이어 뉴욕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형사재판소를 위한 연합(CICC)'에서 인턴을 하면서 꿈을 구체화했다.

그는 '인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산가족'이라는 용어도 100%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타국 시민의 불법 억류를 범죄라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명칭을 달리해 가족 분리의 비자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현상의 근본적인 걸 따지려면은 이건 '인권침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비자발적 분리 가족', '강제 분리 가족' 등으로 불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 가족들도 '특수 이산가족'으로 봐야 한다는 제안도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이런 분들이 천재지변으로 가족과 헤어진 것이 아니라 북한 정부가 교류와 통신 등을 제한하면서 비롯됐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죠."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