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대사의 일침,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기자의눈]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2023.2.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2023.2.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성평등 가치를 지지한다. 참여자들이 다채로운 견해들을 공유할 때 행사가 더욱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내달 3일 통일부 주최로 열리는 국제한반도포럼에 불참 의사를 전하며 밝힌 이유다. 통일부에 출입한 지 거의 석 달째지만 사실 한 번도 학자들의 성비에 대해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크룩스 대사의 결정은 기자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취재 차 참석한 통일 관련 포럼, 학술대회 등 대형 행사에서 탈북민 출신의 '통일전문가' 이외에 잘 알려진 국내 여성 전문가는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실 우리나라 학계 전반에 아직 여성 학자가 많지 않은 편이기에 이 업계 역시 당연하다고만 여겼다.

당시 국제한반도포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됐던 올해 포럼의 기조연설자, 좌장, 패널 등 연사 21명 중 여성은 천자현 연세대 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이었다. 크룩스 대사가 불참을 결정했을 당시에는 천 교수의 참석도 확정되지 않아 연사가 전원 남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영국대사관 측은 직접적으로 '성비가 안 맞는다'는 등의 말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채로움'이라는 단어에서 충분히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젠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입장과 함께 성별과 관계없이 국제회의에 '능력과 실력'이 있는 전문가를 초청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도 학술회의 참석, 학교 강의, 출장, 개인 사정 등 여러 사유로 인해 많은 여성 전문가들이 참석 불가를 통보하여 불가피하게 이번 포럼은 다수의 남성 연사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포럼 성격상 신진 전문가보다는 '중견 학자' 이상의 전문가를 위주로 접촉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성별을 떠나 저마다 있었을 사정에도 불구하고 21명 중 20명이 남성 전문가로 발탁된 것은 기존의 '여성 통일전문가' 자원이 분야 별로 다양하지 않고 절대적인 숫자도 충분하지 않던 학계의 '현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통일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크룩스 대사의 일침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연령대, 전문 분야 등을 비롯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국제 사회의 눈높이를 우리는 아직 맞추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2024 국제한반도포럼을 5일 앞둔 29일 프로그램 세션별 패널 소개에서 기존에 없었던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현인애 한반도미래연구소장, 안인해 인민대 교수,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 등 여성 전문가들을 추가하며 연사 구성원에 변화를 줬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렇게라도 변할 것은 변해야 한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