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문화 격차' 줄여야 北 바로 보인다"…MZ 탈북민의 '북한 해설'
1호 한예종 탈북민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 인터뷰
"南에서 소비되는 북한 이야기 달라져야…연주로 북한 인권 알리고 싶어"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유튜브에서 봤는데, 북한이 진짜 그래?"
한국 생활 14년 차인 탈북민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37)가 북한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학교 선후배들한테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은지 씨는 "그게 벌써 30년 전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절 이야기"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한국에 정착한 북한 이탈주민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과 TV 프로그램은 최근 수년 사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척박했던 북한의 90년대를 몸소 겪어온 북한이탈주민 1세대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가 대다수다.
"북한이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이긴 하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거든요.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딱 허용된 선이 있다는 말도 맞지만, 요즘 세대들은 그런 거 잘 안 들어요. 근데 듣는 질문들은 30년 전 북한에 맞춰져 있어요. 요즘 세대 얘기도 그래서 많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직 기타 하나만 보고 달려온 은지 씨가 이제는 '북한을 알리는 연주'를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입학해 1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받아온 은지 씨는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은지 씨는 한예종 마지막 졸업 연주회를 남겨두고 1년 반째 휴학 중인 상태다. 무리한 연습으로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는 증상이 생겨 틈틈이 재활하며 대학원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기성세대와 생각이 달라진 '장마당 세대'
"누가 와서 이유도 없이 발로 차인 일이 생기면 억울하죠. 아무 잘못 없는데 맞아도 어디 말해볼 데가 없잖아요. 예전에는 그냥 때리면 때리는가 보다 그러고 살았다면 지금 '장마당 세대'들은 마인드가 많이 변했어요. '당의 말을 들어서는 내가 굶어 죽겠구나' 이런 생각을 적어도 속으로는 한다는 거죠."
1987년생인 은지 씨는 한국의 MZ세대와 비슷하다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다. 김일성 사망(1994년) 이후 본격적인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식량 배급을 끊었고 일반 가정집들은 월급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 시기를 크면서 보고 자라온 세대들을 '장마당 세대'라고 부른다.
"80년대 초나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94년쯤 되면 저처럼 초등학생이거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시기이잖아요. 나라가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10대 시절을 학교가 아닌 시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장마당 세대'예요."
어린 은지의 학창 시절은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와 겹친다. 고난의 행군은 1950년대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군 토벌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을 참으며 100여일 동안 행군한 데서 유래한 단어인데, 북한에 수많은 아사자가 생겨난 1990년대 중후반도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부른다.
은지 씨는 장마당이라는 곳이 한국의 '전통시장'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비롯해 뭐든지 돈 되는 것은 팔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 저렴하게 사 온 물건에 값을 더 얹어 팔기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 활발한 시장 경제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아마 다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은 10여년(1994~2005년)간 식량난으로 61만 명의 인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굶어 죽은 인구가 늘고, 출생자는 줄어든 영향이다.
"장마당 세대 사람들은 자립심도 있고 오직 개인주의에요. 시장에서 돈을 번 경험과 기억이 있어서 누구보다 '자본주의 물'이 강하게 들어있거든요. 기성세대들은 배가 고파도 당에 충성했는데, 당시 배급이 끊기면서 국가의 도움을 크게 받은 기억이 없는 세대들은 '나라가 나한테 뭘 해줬나', '공부할 나이에 학교도 못 갔다'는 생각이 커요."
◇ 北 '공포정치' 소식만 듣는 한국…"주민 실상 알아야"
은지 씨는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연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이 나쁜 건 맞지만 정권 눈치를 보는 주민들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 실렸던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유포한 사람이 공개 처형당했다'는 탈북민의 증언에 대해서는 ""심한 형벌로 인해 공포에 떠는 주민들이 있다"면서도 "탈북은 가족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저 이유 하나만으로 주민들이 북한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진 않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덤덤히 전했다.
딱 맞아떨어지는 비교는 아니지만, 은지 씨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 사건들을 예로 들며 "누가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당장 나라를 떠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지 않느냐"며 "북한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다 자기 상황에 맞게 살길을 찾아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연일 북한의 '공포정치' 소식만 듣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북한 주민의 소소한 일상들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순이가 있고, 계속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어떤 사람들은 북한 안에서 여행하면서 잘 살아요. 북한을 떠나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 지금까지 3만 명이 넘는다는데 무조건 다 배고파서 오는 게 아닌 것처럼 개인 성향 따라 이유가 다 달라요.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데 알려진 하나의 정보로 너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북한에도 클래식 음악이 있나', '북한 사람들은 인권 침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 등 현재 북한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질문들이 여전히 대다수이고, 과거 북한 사회의 단편적인 면만 바라보고 있다는 시선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이제 젊은 세대들은 거의 다 핸드폰을 사용해요. 자체 생산된 핸드폰, 태블릿 사용해요. 외국 제품들을 국내에서 자기네들끼리 카피를 많이 해서 따라 만든 제품들이 많죠. 30년 전 분위기랑 정말 많이 달라진 거죠."
다만 은지 씨와 같은 음악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유'였다. 북한에도 다양한 악기가 있지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다 체제를 찬양하는 곡들로 지정돼 있었다. 그 밖의 서양식 혹은 한국 노래를 연주하면 안 된다.
심지어 생일날 친구 집에 초대돼 노래를 작곡하고 놀아도 누군가 신고할 수 있어서 노심초사였다. 그러다 보니 기타 실력도 늘 수 없는 환경에 갇히게 되는 것이 은지 씨가 북한을 벗어나고자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탈북민들이 배가 고파 탈북했다면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장마당 세대, 'MZ 탈북민'들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통일연구원의 통계를 봐도 변화는 뚜렷하다. 2007년 입국 탈북민 실태조사에서는 '식량 부족·빈곤'이 45.3%, '북한체제가 싫어서'가 15.3%, '더 많은 부를 위해서'가 10.5%였는데, 2023년 조사에서는 '식량 부족'이 21.6%, '북한체제의 통제가 싫어서'가 20.4%, '가족들에게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주려고'가 10.7% 순으로 드러났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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