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최고사령관·사상 지도자…'김일성 이미지' 진화시키는 김정은(종합)
김일성 수사 차용하고 주애 내세워 '아버지' 이미지 부각
정부 "김일성 따라하면서 통일유산은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
- 구교운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전시 최고사령관', '사회주의 대가정 어버이', '사상 지도자' 같은 과거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자신을 우상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최근 정치·경제 특이 동향에 관해 "연초부터 북한은 체제 결속과 내부 동원을 위해 김정은을 우상화하고 권위를 살리는 데 애쓰고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남북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김 주석의 70여년 전 수사를 차용하며 자신과 할아버지를 연결하고 있다.
김 총비서가 지난해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조선 영토 평정'을 언급한 것은 김 주석이 6·25 전쟁 이전인 지난 1948년 9월 북한 정강에서 '국토 완정'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김 총비서가 김 주석의 '무력 적화통일' 목표를 계승한 최고사령관임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총비서는 또 김 주석이 가졌던 '사회주의 대가정 어버이'의 이미지도 강화하고 있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사회주의 대가정'이란 김 주석이 1962년 제시한 것으로 국가를 '어버이(수령)-어머니(당)-자녀(인민)' 관계로 이어지는 하나의 가정으로 보는 개념이다.
그는 새해 첫날(1월1일) 공개 일정으로 학생 소년들의 설맞이 공연 관람을 선택하며 '온 나라 대가정의 자애로운 어버이' 행보로 자신을 포장했다. 최고지도자의 설맞이 학생 공연 참석은 1994년 공연에 김 주석이 참석한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김 총비서는 또 지난 2022년 11월 주애를 처음 매체에 노출한 뒤 주애의 손을 잡고 걷거나 일정 시선을 마주치는 등 딸을 활용해 '다정한 부녀' 이미지를 적극 연출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은 '사상 지도자'로서의 김 총비서 이미지도 부각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중앙연구토론회에서는 '김정은 혁명사상'을 "당과 혁명의 유일한 지도사상"이라고 찬양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집권 10년 차인 2021년부터 본격화됐고, 이를 통해 독자적 사상체계 구축의 모양새를 내기 시작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김 총비서의 사상을 국가 최고 이념 수준으로 격상했다"라며 "계승자가 아닌 독자적 통치 이념을 제시한 탁월한 사상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해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총비서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닌 할아버지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김 주석 집권 당시엔 경제 상황이 비교적 양호했고, 김 주석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 집권기인 1990년대 북한은 수십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정부는 또 북한이 '김정은 통치 체제', '수령에 대한 충성', '세습 체제' 유지를 위해 김 주석의 이미지를 집중 활용하고 있지만 논리적 모순도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김 총비서가 1948년 김 주석의 무력통일 언급을 시사하면서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김 주석의 통일원칙이 담긴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한 것은 선대 유산을 부정하는 것과 같아 자가당착이라는 게 당국자의 지적이다.
또 배급제 등 김일성 시대의 각종 지원 혜택은 사라진 가운데 사회주의 대가정 어버이 이미지만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경제난과 약화된 집단주의를 방증한다고 당국자는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김정은의 유일한 지도사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계속 통용될지는 미지수"라며 "북한 주민들 사이에 외부 문화가 확산되며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특히 김정은 집권 후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하는 인식도 강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최근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백두혈통 영도체계가 유지돼야 한다'는 문항에 대해 김 총비서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 중 52.6%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ku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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