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두려웠나…'몰수패' 가능성 감수한 北 '불가피한 사정'[노동신문 사진]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북한과 일본의 평양 경기가 결국 무산됐다. 북한은 경기를 불과 엿새 앞두고 '불가피한 사정'을 대며 '일방적'으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B조 4차전 평양 경기 불가를 통보했다.
북한이 얘기한 '불가피한 사정'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일본에서 확산하고 있는 연쇄상구균독성쇼크증후군(STSS)을 경계한 방역상의 조치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 매체에서 최근 들어 일본의 각종 전염병 확산세를 주시하는 보도가 이어지긴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의 각지에서 2월 이후 홍역 환자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고 홍역 전파 상황을 보도했다. 관련 보도는 22일에도 21일에도 나왔다.
특히 홍역 관련 "해외로부터 입국한 남성이 홍역에 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라거나 "부모를 따라 외국에 갔던 적이 있는 어린이가 홍역에 감염됐다"면서 '외국 방문자'를 경계했다.
만약 북한이 '일방적 경기 불가'를 통보한 진짜 이유가 일본 내 전염병이 맞는다면 이는 북한이 코로나19 상황 종료에도 여전히 전염병에 대한 경계가 상당하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우리의 질병관리청은 STSS가 치사율이 30%에 달하는 전염병이지만, 신종 질병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질환이라며 국내 유행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 병으로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각국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도 아직 큰 경계를 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인데도 북한은 가장 먼저 나서서 일본 선수단의 자국 입국을 막아선 것이 됐다. 더욱이 이번 사태로 북한은 '몰수패'나 징계 가능성도 떠안았다.
이는 또 한편으로 북한이 지난 4년간 국경을 봉쇄한 채로 구축해 온 방역 체계에 대한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여전히 보건,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0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북한 여자 축구팀 선수들이 귀국한 사진에서 이들을 환영하는 평양 주민들이 일제히 마스크를 착용한 것도 같은 이유일 수 있어 보인다.
북한의 경기 불가 통보가 단지 전염병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의 상황이나 정치적 사안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지난해부터 전방위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교류는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평양 공연을 위해 수십명이 북한을 찾았다. 또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북한을 찾은 러시아 단체 관광객만 160명에 이른다. 관광객들이 별도 격리 기간을 거쳤다거나 방역 수칙을 지켜야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신문은 그러면서도 23일 "러시아에서 돌림감기 및 급성호흡기 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다"며 러시아 내 보건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번 사태로 대규모 국제 행사 주최 같은 북한의 대외 활동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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