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에선 어떤 유물 나올까'…'충주사고' 전면조사 필요
아래층이 넓은 높이 솟은 2층 누각 추정
선문류 기와와 무문암막새 등 유물 출토
- 윤원진 기자
(충주=뉴스1) 윤원진 기자 =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충주사고(史庫)가 제대로 복원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8일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사고 하층 유구를 확인하기 위한 전면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읍성 단계별 복원 계획에 따라 사고(성내동 456 일원) 추정지에서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1차 발굴조사에선 대규모 기와 건물지를 확인했고, 2차 조사에선 하부 문화층 유적을 발굴했다.
충주읍성 유적층위는 4개 층으로 구분된다. 1층은 근대 이후 복토층, 2층은 조선후기 문화층, 3층은 고려말~조선전기 문화층, 4층은 통일신라~고려 문화층이다.
현재까지 노출된 건물지 규모는 동서길이 24.9m, 남북너비 24.5m로 정면 7칸, 측면 6칸 이상으로 추정된다. 좌우 익랑을 가지는 'ㄩ'자 형태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둬 날마다 시정을 기록했다. 한 임금이 전대의 역사를 편찬한 걸 실록이라 하고 이를 사고에 봉안했다.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은 2부씩 등사해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사고(실록각)에 보관했다. 그런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 성주 등 3사고 실록이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 실록만 유지됐다.
조선시대 사고는 성주사고 화재 사건 기록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아래층이 넓고 높이 솟은 2층 누각으로 추정된다. 2층은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사고에 봉안한 실록은 피나무로 만든 실록함에 보관했다. 사관들은 2~3년 마다 햇볕이 잘 드는 음력 9~10월 실록을 꺼내 실록의 상태를 확인했다.
발굴조사에서는 선문류 기와와 무문암막새, 단각고배, 인화문토기류 등이 나와 사고지가 있던 장소임을 증명했다.
국원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발굴지는 주변 주택과 맞닿아 있어 발굴조사에 한계가 있다"면서 "충주사고 하층 유구를 확인하기 위한 전면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오는 11월 충주읍성 학술대회를 열어 충주사고의 규모와 역할을 재조명할 계획이다. 충주사고 발굴조사는 충주읍성 복원 과정의 첫 단계다.
blueseek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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