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시간 장송곡…제천 경찰수련원에 무슨 일이

주민들 "농산물판매장 설치 등 약속 안지켜" 수년째 집회
소음에 방문객 불만 법정다툼까지…"제천 이미지 실추" 걱정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경찰수련원 입구에 마을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과 농성 천막.2023.6.3.ⓒ 뉴스1 박건영 기자

(제천=뉴스1) 박건영 기자 = "어버이 몸져 눕고. 어어야~ 어기~영차"

지난 3일 오전 8시쯤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경찰수련원. 이른 아침부터 경찰들의 휴양지인 수련원이 장송곡과 광주 민주항쟁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 구절 소리로 가득 찼다. 을씨년스러운 장례식 상여소리는 청풍호 상류 골짜기를 따라 난 산자락을 타고 시설 곳곳과 객실 안까지 울려 퍼졌다.

이날 연휴를 맞아 휴양을 보내려 이곳을 방문한 경찰 가족들은 알 수 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해했다. 두 곡이 번갈아 가며 메아리를 통해 사방에서 들려오는 탓에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어린 자녀와 나이가 많은 부모님과 함께 온 방문객들이 프런트 직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강원도에서 온 경찰공무원 가족 심모씨(65)는 "어제는 장송곡이 늦은 밤까지 나와 밤잠을 설치게 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시끄럽게 해 잠에서 깼다"며 "모처럼 가족들과 멀리까지 놀러 나왔는데 연휴를 망친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찰수련원 관계자는 "매일 같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송곡이 나와 불만 민원이 수십 건씩 들어온다"며 "경찰 신고까지 이어져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장송곡의 정체는 수련원 건물과 100여m 떨어진 곳에 이 마을 주민들이 확성기를 통해 틀어 놓는 것이다. 수련원 입구에는 마을 주민들이 설치한 확성기, 농성 천막과 경찰청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었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경찰수련원에 마을 주민들이 설치한 확성기.2023.6.3.ⓒ 뉴스1 박건영 기자

마을 주민들이 수련원에 불만을 표시하는 건 이곳에 수련원을 지을 당시 경찰청이 주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2014년 수련원 설립 계획 당시 경찰청이 학현리 주민들과 공청회 등을 통해 수련원 내에 농산물판매장을 설치하고 인력 채용을 할 때 지역주민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발한 주민들은 2020년 7월 수련원 입구를 농성하기 시작한 데 이어 현재까지 집회를 열어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집회로 인한 소음 문제가 심해지자 지난해에는 방문객과 주민들간 법정 다툼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이 마을 청년회 관계자는 "경찰청이 지역 농산물 판매장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약속을 5년째 안 지키며 미루고만 있다"며 "타지에서 온 방문객들의 휴식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말마다 상여를 들고 행진까지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곳이 경찰청이나 충북경찰청이 아닌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곳이어서 시민들에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애꿎은 타지 방문객들을 인질로 삼아 지역에 부정적인 인식만 심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제천 시민 김모씨는 "수련원 앞에서 수년째 넘도록 장송곡을 틀어놓는 것은 같은 시민 입장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행여나 제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성토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련원 내부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거쳐야 해 수의계약 방식으로 주민들만을 위한 공간을 내줄 수 없었다"며 "대신 몽골텐트를 설치해 판매장으로 사용하게 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제천경찰수련원은 전·현직 경찰 공무원과 그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휴양시설로, 2019년 개소한 전국 최대 규모다. 32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 건축 전체면적 1만271㎡ 규모로 객실(110실), 교육시설, 편의시설, 체육시설, 힐링(치유)시설로 조성했다.

현재 전국에서 하루 평균 300여명이 방문하고 있다.

pupuman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