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기는 게 속 편해' 달라지는 추석 벌초 문화…대행 의뢰 많이 늘어

충북산림조합, 4년간 벌초 대행 의뢰 1만건↑
농촌 고령화·코로나19 영향 탓…매년 증가세

벌초 자료사진.(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청주=뉴스1) 조준영 기자 = #. 충북 진천에 사는 강모씨(69)는 올 추석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겼다. 타지에 사는 아들 2명이 일찍이 귀성 불가 통보를 보내온 탓이다.

벌초할 봉분은 6기. 강씨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 과거 벌초 때 서로 품앗이하던 친척이나 이웃도 노쇠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조상 묘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게 영 마뜩지는 않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코로나19도 벌초 대행을 맡기는 데 영향을 끼쳤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를 다듬는 벌초 문화가 변하고 있다. 후손이 한데 모여 봉분을 매만지고 주변을 정리하는 예법은 점차 퇴색하고 있다.

대신 산림조합이나 전문 대행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벌초를 맡기는 게 일상이 됐다.

28일 산림조합중앙회 충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최근 4년(2018~2021년)간 도내 시·군 조합이 벌초를 대행한 봉분 수는 1만27기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1818기 △2019년 2032기 △2020년 2926기 △2021년 3251기로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지난해와 2018년을 비교하면 무려 78.8%(1433기)나 늘었다.

올해 역시 벌초 대행 의뢰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예년에 비해 20%가량 비용이 늘었는데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일부 시·군 조합은 일찌감치 예약을 마감하고 벌초 작업에 착수했다.

진천군산림조합과 음성군산림조합은 '벌초 도우미' 접수를 마감했다.

진천산림조합은 지난 22일부터 인력을 동원해 벌초를 하고 있다. 접수창구를 열자마자 신청자가 몰려 지역 내 봉분 300기를 벌초하게 됐다.

해당 조합 관계자는 "올해는 기존 이용 고객에 더해 새로 의뢰하는 분도 상당수"라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합이 벌초 대행할 수 있는 봉분 수를 모두 채웠다"고 말했다.

통상 추석 두 달 전부터 벌초 대행 의뢰를 받는 음성산림조합은 이달 12일 접수를 마감했다.

접수 기간 들어온 벌초 대행 봉분 수는 300기 안팎이다. 올해는 신규 의뢰도 늘었다.

음성산림조합 관계자는 "매년 벌초 도우미를 이용하려는 고객이 늘고 있다"면서 "올해도 전체 대행 의뢰 중 10%가 신규 접수 건이다"라고 전했다.

늘어난 대행 의뢰에 작업단 규모를 늘리는 조합도 있다.

괴산증평산림조합은 작업단 3개 팀을 운영한다. 1팀당 인원은 4명으로 3개 팀일 경우 12명이 벌초 작업에 투입된다.

해당 조합은 이달 1~5일 벌초 도우미 신청을 받아 수용 최대치(봉분 350기)를 모두 채운 바 있다.

괴산증평산림조합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용 최대치를 채웠다"며 "원활한 작업을 위해 4명씩 모두 3개 팀을 꾸려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벌초 대행 의뢰 증가 요인 중 하나로 고령화가 꼽힌다. 현실적으로 중노동인 벌초를 명절 때마다 도맡아 할 젊은 세대가 없는 형편이다. 핵가족화로 옅어진 친족 개념도 문제다.

영동군산림조합 관계자는 "벌초 자체가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예전과 달리 직접 하려는 분들이 없다"며 "이런 현상은 고령화 추세에 맞춰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도 벌초 문화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일부 산림조합만 놓고 보더라도 벌초 대행 의뢰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일례로 옥천군산림조합은 코로나 사태 첫해인 2020년 봉분 338기를 시작으로 지난해와 올해 370기를 벌초했다. 한 해 평균 봉분 140기를 벌초하던 시기와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옥천산림조합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일가친척이 모이기 어려워지자 벌초도 아예 맡기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대행 신청이 늘어난 뒤 줄지 않는 걸 보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벌초 문화도 점차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reas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