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으면 정신 못차리지?" 스물다섯 청년의 첫 직장은 생지옥…극단선택

직장상사 괴롭힘 속 극단선택…"네 부모 죽이겠다" 습관적 폭언
가해자 1심서 징역 2년6개월…30일 항소심 첫 공판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가자, 마지막을 장식하러."

지난해 5월 23일 강원 속초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근무하던 스물다섯 살 전영진 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떠난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차량 내 블랙박스에서 들을 수 있었다. 세상과 이별을 작심한 듯 나지막이 읊조린 영진 씨의 목소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열어본 형 영호 씨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동생 영진 씨가 2년여간 첫 직장에서 겪은 '지옥'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영진 씨와 그가 '형'이라고 부르는 직장상사 A 씨(40대)가 나눈 통화 700여 건 중 정상적인 대화는 없었다. 호칭만 형과 동생이었을 뿐 '씨X' '병X' '처맞고 싶냐' 등 폭언과 욕설이 난무했다.

특히 폭행은 일상으로 보였다.

지난해 3월 29일 이뤄진 영진 씨와 A 씨의 통화에서 A 씨는 "야이 씹X끼야. 요새 안 처맞으니 재밌지? 내일 아침부터 맞아보자. 내일 아침 죽을 각오하고 나와"라고 윽박질렀다.

또 하루 뒤인 3월 30일에도 A 씨는 "넌 또 처맞을 각오하고 있어"라고 협박했다.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A 씨는 틈만 나면 "처맞을 각오를 하라"며 영진 씨를 겁박했다.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12대야"(2023년 4월 19일)

"이 개X끼가 뒤지려고, 안 맞으니 풀어져서 또 맞고싶지? 오늘 한번 보자."(2023년 5월 3일)

"안 맞으면 제대로 안하지. 안 맞고 보름을 못가지."(2023년 5월 8일)

"맨날 처맞고 이렇게 살래? 나한테 처맞고 며칠 지나면 원상복구 되고."(2023년 5월 10일)

"죽여벌라. 또 처맞고 싶지."(2023년 5월 13일)

이는 A 씨가 영진 씨에게 했던 폭행 협박 중 극히 일부분이다.

실제 폭행도 이뤄졌다.

지난 4월 3일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협박, 폭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 재판에서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났다.

A 씨는 지난해 3월 초 사무실 앞마당에서 영진 씨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같은 해 5월까지 지속적으로 영진 씨를 폭행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영진 씨에게 "부모를 죽이겠다"는 입에 담지도 못할 폭언도 내뱉었다.

같은 해 5월 19일 이뤄진 대화에서 A 씨는 영진 씨에게 "대단한 집구석이다 진짜. 눈 돌아가면 너네 애미애비고 다 죽일거야"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 3월 29일 대화에서 A 씨는 "너네 집 X나 잘 살아? 너네 엄마 뭐해. 너네 아버지 뭐해. 집에 돈 버는 사람 누가 있어"라며 "니가 그러는데 어떤 골빈X이 널 만나겠니"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86차례의 폭언, 16번의 협박, 4차례 폭행. 그러나 이는 통화녹음이나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직접 잡힌 증거의 일부일 뿐 영진 씨가 직장생활을 했던 2년여간 수많은 폭행과 폭언, 협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너는 내가 가서 마음에 안들면 감수해야 돼. 알았어?"

영진 씨는 마지막까지도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다가 세상과 이별을 택했다.

이렇게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이 같은 폭행과 폭언, 협박이 "훈계와 지도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직장 내 괴롭힘’ 내지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직장 내에서 피해자에게 가한 폭행과 폭언은 피해자의 기본적 인권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에 나타난 피해자의 모습은 피고인 앞에서 매우 위축돼 고개마저 제대로 들지 못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자 동생인 피해자를 잃은 피해자의 유족들 역시 커다란 슬픔과 비통함에 빠져있다”며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 책임과 비난 가능성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A 씨는 형량이 너무 높다며 항소했다.

영진 씨 형 영호 씨는 "동생은 평소 사려가 깊고 밖에서 겪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처음 통화녹음을 듣고 동생이 겪었을 상황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2년 동안 겪은 끔찍했던 상황에 비하면 1심 형량은 너무 낮다. 더 이상 동생과 같은 일을 누군가 당하지 않게 그 기준이 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항소심은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첫 공판이 진행된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