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 했는데 지금 "교도소도 좋아요"[지방소멸은 없다]
한때 12만, 3만명대 급감…'사람 많던 기억'은 관광자원으로
불금 저녁 번화가 "스산"
- 윤왕근 기자
(태백=뉴스1) 윤왕근 기자 = '3만9286명.'
강원 남부산지에 위치한 고원도시 태백의 현재 인구 수(지난 1월 기준)다. 이는 전국 시 단위 지역 중 가장 적은 인구 수이자, 철원 등 강원도내 군 단위 지역보다 적은 숫자다.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성지인 태백의 인구수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81년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통합해 시로 승격됐을 당시 태백의 인구는 11만4000명대. 지역 소재 탄광이 44곳으로 정점에 달했던 1987년에는 12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석탄 수요 감소로 탄광이 급격히 줄면서 인구 수도 급감해 1990년 10만명, 2012년 5만명으로 줄더니 결국 지난해에는 4만명 선이 붕괴됐다. 40년 사이, 8만명 안팎의 인구가 사라진 셈이다.
한때 '탄광 월급날엔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던 태백의 현재는 '불금'에도 번화가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고, 사람으로 가득찼던 영광의 시절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구 급감에 위기감을 느낀 지자체는 다른지역선 '혐오시설'로 기피하는 교도소까지 유치하는데 이르렀다.
◇'시간이 멈춘 마을' 철암…'사람의 흔적'이 관광자원으로
태백 시내에서 10여㎞ 떨어진 곳에 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이 존재한다. 바로 철암동이다.
마을에 철 성분이 많은 '쇠바우'가 있다고 해서 말그대로 '철암'이 지명이 됐다. 단일 탄광으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장성탄전의 석탄이 철암역으로 운반돼 오면서 해당 마을에 탄광사회가 시작됐다.
탄광산업이 활발하던 1980년대 영동선 중심도시인 강릉역의 역무원이 28명이었던 반면 철암역 역무원은 300여명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인구만 4만여명에 이르던 철암의 저녁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막장에서 고된일을 마친 광부들은 삼겹살집에 들러 소주를 마시며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냈고, 중국집에선 고급 요리와 고량주 주문이 이어졌다.
고성방가가 밤새 울려퍼지고 대폿집에선 전국 각지에서 모인 광부들끼리 술을 마시다 '전라도네, 경상도네' 하면서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광부의 부인들은 철암시장에서 찬거리를 사고 수입상품점에 들러 옷을 고르거나 화장품을 사서 돌아갔다.
그러나 2023년 현재 철암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4만여명에 달했던 인구는 2000명 안팎으로 줄었고, 철암역 이용객은 하루 10명 남짓에 불과하다.
다만 전성기 상점과 주거지는 그대로 보존돼 '철암탄광역사촌'이라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탄광역사촌은 철암역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하천변을 중심으로 '페리카나', '호남슈퍼', '진주성', '봉화식당', '한양다방' 등 당시 실존했던 가게와 간판이 그대로 유지돼 있어 마치 80~9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느낌을 준다. 물론 실제 영업을 하진 않고 내부는 태백과 철암지역 사료전시관이나 아트갤러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불과 300여m 정도의 상점거리에는 식당이나 다방 뿐 아니라, 단란주점, 수입상품점, 건설회사, 체육사, 의상실, 당구장 등 상점터가 빼곡히 보존돼 있어 당시 철암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같은 시설은 인구급감으로 상인들이 떠나가면서 급격히 낙후했고, 2000년대 들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남루한 건물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결국 원형을 보존해 관광자원화 하기로 했다. 동네 전체가 '사람이 많았던 시절'을 컨셉으로 한 거대한 박물관이 된 셈이다.
◇"불금인데"…스산함마저 느껴지는 번화가
철암동을 벗어나 태백시내에 진입해도 사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24일 오후 8시쯤 태백 최대 번화가인 황지동 황지연못 인근 거리는 휑하다 못해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불금' 저녁이었지만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몇 안됐고, 그마저도 고령자가 많았다. 특히 20대로 보이는 이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시내 중심가엔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은 상점이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코로나 장기화 속 이처럼 유동인구가 없는 곳에 가게를 차릴 '강심장'은 없어보였다.
상점이 즐비했지만 불 켜진 곳은 몇 되지 않았다. 식당도 태백의 명물인 물닭갈비 전문점이나 연회석이 있는 식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었다.
중심가를 살짝만 벗어나니 온 천지가 어둠으로 변해 걸어다니기 두려울 정도였다. 인근 아파트에는 불켜진 곳이 몇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한 해가 다르게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태백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주민 김모씨(60대)는 "20년 전만 해도 이곳에 젊은 사람으로 가득했다"며 "술 마시고 휘청대며 걸어다니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 자체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박모씨(60대)는 "내년말 장성광업소마저 폐광하면 인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더 빠져나갈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에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인구소멸 위기 속 '기피시설' 교도소까지 유치
실제 태백에서 마지막 남은 탄광인 장성광업소는 내년 말 폐광될 예정으로, 인구 붕괴는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이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태백시와 지역사회는 결국 타지역에서는 기피시설로 분류되는 교도소를 유치하기에 이르렀다.
오는 2025년 착공을 시작, 2028년 준공할 예정인 태백 교정시설은 황지동 산 6번지 일대 44만1082㎡ 규모로 지어진다. 정원 수감자는 1500명이다.
태백시는 교정시설 유치로 직원 500명과 부양가족을 포함한 1500명 이상의 인규 유입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정도 인구유입으로는 더욱 빨리지는 태백지역의 인구소멸 속도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지역사회 우려다.
김주영 태백지역현안대책위원장은 "인구유출이 급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태백지역에서 정주하는 강원랜드 종사자들까지 폐광지가 아닌 제천이나 원주, 삼척시내 쪽으로 이주를 원하고 있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며 "강원랜드에 셔틀버스 동선을 폐광지로 제한하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태백을 비롯한 폐광지역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선 광주형 일자리 같은 '태백형 일자리'가 조성되는 등 일자리와 접근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문성희 태백시 인구교류팀장 "인구 감소 대응 기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용역 중에 있다"며 "5월 관련 용역이 끝나는 대로 인구감소 대응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연차별 인구 회복 수, 회복 방안을 구체화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성희 팀장은 "내년 폐광하는 장성광업소 폐광지를 핵심광물 국가산단으로 육성하고 고원관광 휴양 레저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지속·발전시키는 등 관련 산업을 활성화해 정주 인구를 유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인구 유출 방지를 위해 공공산후조리원 조성을 위해 최근 착공에 들어가는 등 정주여건 조성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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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