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0실버청년] 구순 앞둔 '국민의사' 이시형이 말하는 '나이 든다는 것'

일어나서 운동하고 20분 명상…패스트푸드 피하고 한식 즐겨
스트레스 받아들이는 자세 중요…"나이는 인생의 슬기가 쌓이는 것"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오는 2026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100세 이상 인구 역시 2020년 이미 5000명을 넘겼다. 칠순잔치도 옛말이 되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청년처럼 살고 있는 80~90대 현역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이시형 박사. 해가 지나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 박사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대한민국을 위해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이시형 박사 제공) 2022.11.10/뉴스1

(홍천=뉴스1) 윤왕근 기자 = 최근 지혜로운 육아법을 제시하며 부모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오은영 박사부터, 중증외상 전문의 이국종 교수까지 대중은 '스타 의사'에 열광한다.

불과 100년을 못 사는 인생이지만 '건강한 삶'에 대한 의지와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오은영 박사와 이국종 교수 이전엔 '국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박사는 정신건강을 비롯해 각종 건강관리법을 소개하며 국민 건강 멘토 역할을 해 왔다.

1934년생인 이시형 박사는 올해 만 88세의 나이도 여전히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도 강원 홍천군에 설립한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과 세로토닌 문화원 관련 일에 매진하고 있다.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만난 이시형 박사에게 고령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관리 비결을 물었다.

의외로 규칙적인 생활, 가벼운 운동, 올바른 식습관 등 특별할 것이 없는 '비결'이 되돌아왔다.

이 박사는 "평소 오후 10시에 잠이 들고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며 "잠이 모자르다 싶으면 낮잠을 20분 정도 잔다"고 말했다.

그는 "낮잠은 피로 회복에도 아주 좋아서 창의적인 활동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시형 박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드는 것이 아닌 익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인생을 사는 슬기가 그만큼 쌓여간다는 의미다. 사진은 이 박사가 설립한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의 모습.(이시형 박사 제공) 2022.11.10/뉴스1

기상 이후에는 간단한 운동과 명상을 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이 박사는 "아침 루틴이 딱 정해져 있다. 기상 후 방 안에서 주로 운동을 한다"며 "스트레칭으로 시작해서 팔굽혀펴기, 스쿼트, 스탬프 운동 기구를 이용한 제자리 걷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난 후에는 20분 정도 아침 명상을 한다"며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오히려 피곤함이 물러나고 머리가 상쾌해진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벼운 운동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저의 운동 목표"라며 "이런 운동은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를 활발하게 해서 기분이 상쾌하다. 신체를 위한 운동을 하기 보다 뇌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사'는 건강 관리를 위해 무엇을 챙겨 먹는지 궁금했다.

이 박사는 "건강을 위해 특별히 먹는 것은 없고 패스트푸드나 인공화합물이 들어간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며 "주로 한식을 즐겨 먹는데 한국 전통식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면역 증진 식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발효음식과 다양한 나물 반찬은 식물이 지닌 파이토캐미컬(phytochemical·식물성 화학물질)이라는 값진 영양소를 최고의 방법으로 우리 몸에 흡수할 수 있게 돕는 조리법"이라고 덧붙였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묻는 질문에는 습관이라는 말 그대로 끊이지 않고 되풀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방송만 봐도 건강한 생활습관을 배울 수 있다"며 "좋다 싶은 습관 하나를 들이고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의학과 식문화의 발달로 현대인들의 육체적 스펙은 그 어느 시절보다 뛰어나지만 마음의 병은 깊어가고 있다. 국내 대표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스트레스는 이겨내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스트레스는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피할 수 없기에 스트레스와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처는 건드리면 오히려 덧나기 마련"이라며 "같은 스트레스라도 ‘이정도 스트레스야 누구나 있는 것이지’하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경험하는 등 평탄치 않은 인생을 스스로 이겨내 온 이시형 박사.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이 박사가 설립한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의 모습. (이시형 박사 제공) 2022.11.10/뉴스1

이 박사는 '국민 건강 멘토'이기도 하지만 전쟁을 겪고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를 경험하는 등 한국 현대사 한켠에서 굴곡을 겪고 성장한 '시대의 멘토'이기도 하다.

끈기와 노력, 실력으로 역경을 이겨낸 삶이지만, 그는 '운이 좋았을 뿐' 이라고 말한다.

이 박사는 "내가 하는 일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난 운이 좋았다"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비마다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겨 오늘까지 왔다"고 소회했다.

그러면서 "내 생애를 돌아보면 '살아왔다'는 표현보다 '살려져 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며 "내 인생훈은 사은(謝恩)이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입은 은혜에 감사하고 봉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멘토에게 취업과 결혼, 내집 마련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이 박사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은 세대로서 난 항상 유대인 포로 수용소 생각을 한다"며 "'아무렴 거기 보다는 낫겠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 어떤 난관이나 고통도 이겨낼 수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포로 수용소 생활을 겪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정신의학을 이어 받은 의미치료 아카데미를 상담가 박상미 교수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고통과 시련이 닥쳐도 괴롭고 힘든 심정을 넘어 자기 초월의 경지에 오를 수 있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국민의사에게 노화와 병듦,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이시형 박사는 "나이가 든 다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며 "인생을 사는 슬기가 그만큼 쌓여간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전하고 공부하고 사회에 이바지 하라. 그것 만으로도 늙음과 죽음의 공포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시형 박사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트레스와 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것이다. 사진은 이 박사가 설립한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의 모습. (이시형 박사 제공) 2022.11.10/뉴스1

현역이기 때문에 여전히 지하철 유료승객이라는 이시형 박사. 해가 지나면 구순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4년 후면 우리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그 때를 위해 건강과 돈, 좋은 인간관계 등 세가지를 준비해야 한다"며 "세계의 부호들이 한국의 초고령 사회 문화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아올 날을 기대하며, 초고령 사회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책을 쓰고 여러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시형 박사는?

1934년 대구 동구에서 출생, 경북고와 경북대 의대를 졸업했다.

1968년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의대와 성균관대 의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서울대 의대에서 외래 교수를 역임했다.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과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 과장, 강북삼성병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도 홍천에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과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사)세로토닌문화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학회 벽봉학술상과 숲 치유기능 공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행복독종 리더스북', '이시형 박사의 면역 혁명', '세로토닌 하라',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 90여권이 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