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원망에" 80대 노모 둔기로 살해하고 PC방 간 50대 패륜아

[사건의 재구성]"다른 사람 짓"…둔기 미리 준비, DNA 검출
1·2심 존속살해 혐의 징역 18년…"정신과 치료받다 분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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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제가 안 그랬다니까요."

80대 노모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A씨(55)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A씨는 "내가 외출을 한 사이에 누군가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 2심 재판부는 모두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A씨에 대한 유죄 선고에는 범행 당시 그가 입었던 옷, 피 묻은 둔기에서 숨진 노모와 그의 DNA가 나온 점,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던 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비극적인 사건은 노모를 원망하는 오래된 악감정에서 비롯됐다.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3년부터 전북 전주의 한 주택에서 친모 B씨(80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 요청으로 지난 2015년 3월부터 6월까지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했다. 앞서 지난 1999년 진단 받은 정신 질환 치료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씨는 목이 돌아가는 '사경' 증세를 겪게 됐다. 이게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A씨는 이런 증상이 B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B씨가 계속해서 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이라고 여긴 것이다.

2021년 4월부터 다시 통원치료를 받게 된 A씨는 한 동안 처방 받은 약을 잘 복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부터는 약을 먹지 않았다. 약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해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A씨에게 "약을 먹으라"고 다시 권유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쌓여 있던 B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폭력성도 점점 심해졌다. 지난해 12월30일에는 "주문한 떡이 없어졌다"는 B씨에게 발길질까지 했다. 이 일로 B씨는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결국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넘고야 말았다.

A씨는 지난 1월25일 오후 5시18분께 미리 준비한 둔기로 안방에 있던 B씨 오른쪽 머리를 때렸다. B씨가 방바닥에 쓰러져도 둔기로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B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하지만 A씨는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PC방과 마트를 오갔다. 게임을 하고 음식과 옷 등을 구매했다. A씨의 범행은 이튿날 오후 3시20분께 이웃주민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가 "B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 집에 도착했을 당시 현관문과 창문 모두 잠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경찰관들이 집 문을 강제로 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A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경찰관은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 잠겨 있는 안방 문을 열어 사망한 B씨를 발견했다. 머리와 얼굴 등이 심하게 함몰된 상태였다.

A씨의 태도는 천연덕스러웠다. 경찰이 왔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B씨가 숨진 걸 이제 알았다. B씨와 두 달 동안 못봤고,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존속살해 혐의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았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겪어 망상증이 발현된 상태였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둔기와 청테이프를 미리 준비하고, 사용한 둔기를 화장실에서 세척하고 욕조에 놓아둔 점 등 범행 전후 사정에 비춰볼 때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이용희)는 지난 9월7일 "피고인은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반사회적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런데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일말의 후회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검사와 A씨 모두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을 맡은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6일 "피고인은 정신질환을 겪은지 오래 돼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된다"면서도 "피해자가 어머니라는 점과 제출된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심 판단은 적절하다"며 검사와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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