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 호소 임신 여교사, 병원행 막은 '슈퍼갑' 교감
복통 참던 여교사 결국 유산...법원, 위자료 배상 판결
19일 전주지방법원에 따르면 50대 후반의 전북 모 사립 고등학교 교감 A씨는 같은 학교에 재직하는 40대 후반의 여교사 B씨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A교감은 2011년 7월12일 낮 12시50분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급히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B씨의 요청을 "응시현황이 마감돼야 조퇴할 수 있다"며 조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1개반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국가성취도 평가시험이 치러졌다. 동료교사 2명과 함께 시험 감독에 나섰던 B씨는 시험감독 중 약간의 복통을 느꼈으나 참다가 마침내 시험이 끝나자 A교감을 찾아갔던 것이다.
진통이 심해지자 B씨는 50분쯤 뒤 다시 A교감을 찾아가 조퇴를 요청했지만 "교육청에 답안지를 주고 와서 조퇴를 시켜주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30분 뒤엔 더욱 심해진 복통에 찾아갈 기력도 없어 인터폰으로 조퇴를 요청했다. 하지만 역시 "안 된다"란 답변만 돌아왔다.
15분 뒤 참다 못한 B씨는 결국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너무 아파서 조퇴를 해야겠다"고 말하고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B씨가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의 차량에 올라 타 운전을 하려는 순간 A교감의 고급세단이 경적을 울리면서 B씨의 차를 가로막았다.
B씨는 "임신 중인데 지금 위급한 상황이고, 더 이상 진통을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사정했다. B씨는 당시 임신 3개월째였다. 그러나 A교감은 "내가 교육청에 가서 (일을) 마무리짓고 올 때까지 다시 교무실에 들어가서 기다려라"고 말했다.
B씨는 그 순간 과거를 떠 올렸다. 그 동안 A교감은 지시를 무시하고 무단조퇴하는 교사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 붙여 징계를 내렸다. 이 같은 사례를 봐 왔던 B씨는 업무를 핑계로 괴롭힘을 당할 게 눈에 보여 차를 돌려 교무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B씨는 동료교사의 권유에 가까스로 가까운 산부인과로 갔다.
임신 3개월만에 유산이 됐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는 "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산모가 위험하다"며 자궁소파수술을 시행했다. B씨는 다음날 다른 산부인과로 옮겨 8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에 B씨는 A교감의 '불법행위'로 유산이 됐고, 그에 따른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A교감을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주지법 민사1단독 심재남 판사는 B씨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A교감이 B씨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A교감)는 원고(B씨)로 하여금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조퇴할 수 있도록 필요하고도 적정한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원고가 조퇴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몸이 아픈 원고가 바로 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금전으로나마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B씨가 사건 전날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당시 "태아의 심장박동소리가 들리지 않아 자연유산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해 A교감의 불법행위로 B씨가 유산이 됐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위자료 액수를 산정하는데 있어 '유산' 부분은 고려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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