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온갖 냄새' 쓰레기 속 노인, 사별한 아내 물건 버리게 하니
[제주통합돌봄]②10개월간 2875명 이용…추천 93점
중장년층 등 기존 돌봄 사각지대 해소 '보편돌봄'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현관문을 열자, 인기척을 느낀 바퀴벌레가 재빠른 속도로 집안 구석에 몸을 피했다. 방안에는 마시고 버린 소주병과 라면봉지, 담배꽁초 같은 온갖 쓰레기들이 옷가지들과 섞여 있고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지난 8월 '제주가치통합돌봄' 제공기관에 소속된 이현실씨가 A할아버지 집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광경이었다.
이씨는 "한마디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집안 환경이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자식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곁을 지켰던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 후 A할아버지는 방안에 틀어박혀 술로 외로움을 달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씨는 요양보호사와 함께 A할아버지를 설득해 쓰레기통이나 다름없게 된 집 안 청소를 시작했다.
버릴 물건을 정해달라는 요청에 A할아버지는 아이들과 같이 들었던 음악 CD와 아내가 썼던 선글라스를 "이제는 버려야지"라며 쓰레기 봉투에 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폭염 속 회전기능이 고장 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몇시간을 청소하니 50ℓ 쓰레기봉투 20여개가 차곡차곡 쌓였다.
사람을 기피했던 A할아버지는 청소를 마치고 "나쁜 생각과 무기력함도 쓰레기통에 버리겠다"며 새로운 삶을 다짐했다.
이 씨는 "청소 후 일주일이 지나 안부 전화를 드리니 '덕분에 집 상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며 "쓰레기로 가득했던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이제는 앞으로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르신의 삶이 조금씩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보고 도와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30일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제주가치통합돌봄서비스' 이용자는 올해 8월까지 10개월간 2875명, 건수로는 3454건이다.
서비스 종류는 식사뿐만 아니라 위 사례처럼 청소 등 가사를 지원해 이용자가 새 삶을 살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용자들이 지난 10개월간 이용한 서비스 유형별로는 '식사 지원'이 1770건으로 가장 많고 '가사 지원' 881건, '방문목욕' 396건, '긴급돌봄' 104건 등이다.
올해 상반기 만족도 조사 결과 '추천 의향' 93.1점, '재이용 의사' 92.4점, '어려움 해결' 90점, '욕구 반영' 89.4점 등 전반적으로 80점대 후반에서 9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통합돌봄의 가장 큰 특징은 돌봄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기존 돌봄 서비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해소해 '보편돌봄'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노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돌봄서비스에 취약했던 중장년층이 그 예다.
사회복지사 백미란씨는 "65세 미만의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힘들어하던 중장년층들에게 도움이 됐다"며 "집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해 외롭게 사투를 벌이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복지사로서 너무나 감사했다"고 했다.
또 다른 통합돌봄 제공기관의 김도연씨는 "아버지의 오랜 간병 끝에 본인도 암 판정을 받은 중장년이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며 "그전까지 중장년층은 돌봄 사각지대였으나 이번에 돌봄 공백을 해소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용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노인(87.9%) 비중이 높긴 하지만 청장년층도 11.7%를 차지했다.
노인 역시 이전에는 '노인장기요양등급'에 지정돼야 돌봄서비스가 가능했으나 통합돌봄에서는 이런 기준이 완화됐다.
표선면의 고서경 주무관은 "노인장기요양등급 재신청을 기다리던 어르신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걱정하던 중 통합돌봄을 이용할 수 있었다"며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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