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병뚜껑이 힙한 가구로…그 뒤에 '세대 상생' 있었다

[재활용 넘어 새활용으로 ➀] 리어플라스틱(Reer Plastic)

편집자주 ...플라스틱 저감과 순환경제 전환을 향한 국제적 노력을 선도하는 '2024 제주플러스 국제환경포럼'이 오는 26일과 27일 제주부영호텔에서 열린다. 포럼을 앞두고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새활용'으로 순환경제를 꿈꾸는 제주 기업 5곳을 차례로 소개한다.

리어플라스틱의 '1520스툴'. 리어플라스틱(Reer Plastic)은 리맨들러 플라스틱(Remandler Plastic)의 약자로, 리맨들러는 다시를 뜻하는 영어 접두사 'Re'와 만들다의 제주어 '맨들다'를 합성해 '다시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리어플라스틱 제공)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았다. 스툴(Stool·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부터 테이블, 인센스 홀더, 마그넷, 키링까지. 모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을 뽐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이리저리 압축해 만든 이 상품의 원료는 다름 아닌 제주에 나뒹굴던 병뚜껑들이다.

스타트업 리어플라스틱(Reer Plastic) 윤태환 공동대표(34)가 이 같은 새활용에 뛰어들게 된 건 비슷한 활동을 하던 해외의 한 비영리 단체를 접하고 나서부터다. 당시 패션업계에 몸담고 있던 윤 대표는 디자인적인 매력만 높이면 상품성이 있을 것이라 보고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인 이재우 공동대표(34)였다. 자동차 정비업계에서 일하는 이 친구라면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던 그다. 실제 이 대표는 인도 간디마하르에 있는 기업 리코 솔루션(RECO Solution)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큰 판재를 제작할 수 있는 시트 프레스 등을 개발한 뒤 국내 수입까지 척척 진행하며 밑작업을 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은 제주였다. '2040 플라스틱 제로 아일랜드(Plastic Zero Island)'를 선언할 정도로 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역인데다 경쟁업체도 없어서였다. 윤 대표는 "재미 있는 걸 가장 많이 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제주시니어클럽 관계자가 활동가들이 수거해 온 플라스틱 병뚜껑들을 살펴보고 있다.(리어플라스틱 제공)

제주에 자리잡은 두 청년은 버려진 플라스틱 병뚜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인연처럼 우연히 알게 된 곳이 바로 '제주시니어클럽'이다.

어르신 일자리 창출 기관인 이 곳은 당시 병뚜껑 등을 수거해 오면 활동비를 지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창고에 병뚜껑을 가득 쌓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리어플라스틱과 제주시니어클럽의 '세대 상생'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다. 어르신들이 플라스틱 병뚜껑을 수거·세척·분쇄해 두면 두 청년이 이를 구매해 가 상품을 제작하는 식이다.

월 평균 거래량만 무려 400~500㎏. 이 거래를 위해 지난 3월 추가 채용된 어르신만 10명이 넘는다. 지난 6월에는 정식으로 업무협약까지 맺고 협력 의지를 재차 다졌다.

리어플라스틱이 제작한 상품들.(리어플라스틱 SNS 갈무리)

현재 리어플라스틱은 제주시니어클럽 뿐 아니라 도내 학교나 단체, 농가 등으로부터 병뚜껑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계 폐플라스틱을 공급받아 상품을 제작해 납품·판매하고 있다.

각 상품의 색상·무늬·형태를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분쇄한 플라스틱 조각들을 압축해 대형 플라스틱 판재를 만들고, 컴퓨터 수치 제어(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공작기계로 가공하는 작업까지 모두 두 청년의 몫이다.

눈에 띄는 건 역시 디자인이다.

두 대표는 "제주를 녹였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의 귤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노랗고 파란 가구들, 한라산을 형상화한 인센스 홀더, 밭담(밭과 밭 사이 경계에 올린 돌담)을 본뜬 트레이, 오름과 바다를 곁에 둔 마을에서 영감을 받은 마그넷 등이 그것이다.

리어플라스틱 윤태환·이재우 대표.(리어플라스틱 제공)

새활용 관련 캠페인 협업에도 진심이다.

리어플라스틱은 창업 초창기였던 지난해 12월 작업실 근처에 있는 제주은행 화북금융센터와 함께 붕어빵 장사를 했다. 센터 개점 30주년을 맞아 준비한 폐플라스틱 가치 인식 제고 캠페인이었다. 당시 두 대표는 플라스틱 병뚜컹을 동전처럼 낸 고객들에게 직접 구운 붕어빵을 건넸다.

이후 서귀포시 로컬 브랜드 마켓인 '놀멍장' 등에서도 리어플라스틱은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코인을 제작해 납품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돌고 돌아 제주삼다수'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모아 온 제주삼다수 뚜껑과 라벨로 키링, 마그넷 등 제주삼다수 굿즈를 제작하는 역할이다. 해당 굿즈는 올 연말 제주삼다수 플래그십 스토어 '카페 삼다코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요즘 윤 대표와 이 대표는 폐플라스틱이 제주의 상징적인 소재가 되는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이들은 "간판, 화분, 벤치 같은 공공재들을 한번쯤은 꼭 제작해 보고 싶다. 플라스틱 판재는 빛 투과율이 좋아 특히 간판을 만들면 정말 아름답다"며 "그런 것들이 하나씩 늘어 보는 사람들이 '뭔가 제주도스럽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나름의 최종 목표"라며 밝게 웃었다.

(이 기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