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농사에 이런 일 처음"… 제주, '벌마늘' 피해에 농가 인력난까지

도내 벌마늘 발생률 48.4%… 정부 '농업재해' 인정

7일 오전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발생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마늘밭에서 이덕근 씨(75)가 마늘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잦은 강우 등으로 인한 벌마늘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2024.5.7./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서귀포=뉴스1) 오미란 기자 = "처음입니다, 처음. 50년 마늘 농사하면서 이 정도로 피해 입은 게."

7일 오전 제주 최대 마늘 주산지인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마늘밭. 예년 같으면 본격적인 수확 철을 앞둔 시기이지만, 이곳을 바라보는 50년 차 베테랑 농부 이덕근 씨(75)의 표정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말 그대로 올 한 해 농사를 망쳐서다.

이 씨는 2000㎡(약 600평) 정도의 이 마늘밭 중 80%가 이른바 '벌마늘' 피해를 입은 상태라고 전했다.

마늘쪽이 나눠지는 시기였던 지난 2~3월 제주에선 잦은 강우와 높은 기온, 일조량 부족 등 이상기후가 이어져 마늘쪽에서 다시 싹이 돋는 2차 생장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이 씨가 키우던 마늘도 다 벌어지고 말았다. 사람이 먹는 데 문제가 없지만 알이 너무 작아져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7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마늘 농가에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발생해 농민이 마늘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잦은 강우 등으로 인한 벌마늘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2024.5.7./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이 씨는 "(벌마늘은) 하품(下品) 중 하품이다. 보통 (마늘이) 1㎏에 3200원이라고 치면 벌마늘은 1㎏에 1200원도 안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의 1700㎡(약 500평) 규모 밭에서 마늘을 키우는 오정순 씨(72·여)도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결혼하고 50년 넘게 이곳에서 마늘 농사를 지었는데 정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벌마늘도 벌마늘이지만 정상적인 마늘도 알이 너무 작아 상품으로 팔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내 벌마늘 피해 발생률은 무려 48.4%에 이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주도의 요청에 따라 이 같은 벌마늘을 최근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재해'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벌마늘 피해 농가는 1㏊당 농약대 250만원, 대파대 55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도는 오는 10일까지 피해 신고를 받은 뒤 현장 확인을 거쳐 피해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농식품부에 국비 지원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7일 오전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발생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마늘 농가에서 제주농협 등 자원봉사자들이 수확작업을 돕고 있다.2024.5.7./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그러나 당초 도가 요구했던 '정부 수매'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농협도 고심이 빠진 모습이다. 김승만 농협경제지주 제주본부 유통지원단장은 "보통 3~5% 정도를 하품으로 수매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벌마늘 피해만 50%에 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수확이 시작된 만큼 어떻게 처리할지 이번 주 안에 결론을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농가들 입장에선 벌마늘뿐만 당장 수확 철 인력난도 큰 걱정거리 중 하나다. 마늘은 다른 작물과 달리 수확에서부터 수매까지 20~30일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 노동력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이에 농협중앙회 제주본부는 '일손 돕기'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농협 측은 자원봉사자 5000명 모집을 목표로 도내 주요 기관·단체·기업 등에 협조문을 발송하고 있다. 이날 오전 이 씨의 마늘밭 앞에선 '2024 영농 지원 발대식'도 열었다.

윤재춘 농협중앙회 제주본부장은 "취약 농가와 고령농가를 중심으로 유·무상 인력을 적극 투입할 계획"이라며 "벌마늘 피해도 정부, 도와 협조해 원활히 지원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7일 오전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발생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마늘 농가에서 해병대 제9여단 등 자원봉사자들이 수확작업을 돕고 있다.2024.5.7./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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