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이어온 '소성주'…인천탁주 대표가 뽑은 최고 안주는?

[지방지킴] 1938년 '대화주조'란 이름으로 시작
3대째 가업 이어오며 품질 개발·사회 공헌 실현

10월 30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탁주에서 만난 정규성 대표.2024.11.2 ⓒ News1 박소영 기자

(인천=뉴스1) 박소영 기자 =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란 뜻이다. 1999년 주세법 개정 전까지 국민은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만 마실 수 있었고, 다른 지역 막걸리는 마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 막걸리를 만드는 대표 공장이 하나씩 있다. 서울엔 서울탁주, 대구엔 대구탁주, 인천엔 인천탁주가 있다.

인천탁주의 역사는 정규성 대표의 할아버지가 1938년 일본인으로부터 양조장을 인수해 '대화주조'란 이름으로 문을 열면서 시작했다. 이후 1974년 인천지역 11개 양조장이 합병해 인천탁주가 설립됐다. 정 대표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1996년부터 이곳을 운영 중이다.

인천 대표 막걸리는 단연 '소성주'다. 인천탁주는 1990년 탁주 업계 최초로 쌀막걸리인 소성주를 출시했다. 인천 식당에서 손님들이 막걸리를 주문할 때 '막걸리 주세요'가 아닌 '소성주 주세요'라고 할 정도로 소성주는 인천에서 역사가 깊다.

소성주 모습.(인천탁주 제공)2024.11.2/뉴스1

막걸리는 흔히 '서민 애환을 달래주는 술'이라고 하는 만큼 늘 국민에게 사랑받아 왔을 것 같지만, 정 대표가 처음 인천탁주를 맡았을 땐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정 대표는 "막걸리는 1970~80년대까지 유통되는 리터(L) 수가 우유보다 많았을 정도였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소주·맥주의 인기가 많아졌다"며 "인천에서도 밭에 가면 농부가 '막걸리 말고 맥주 먹자'고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인천탁주도 2010년 전까지 부침을 겪었다고 한다.

막걸리 열풍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한류 열풍' 때문이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것을 일본인에게 보여주는 내용이 있었다"며 "우리나라 탈춤을 보고 술을 먹는데 그 일본인이 '왜 탈춤을 보고 막걸리를 먹어야지 소주를 먹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막걸리를 먹는데 예전에 비해 머리도 아프지 않고 맛있다는 걸 홍보했는데, 그 시점을 기해 전국 양조장이 흑자를 봤다"고 전했다.

인천탁주는 지금도 지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 대표는 회사 형편이 나아지자 막걸리 품질 개발에 힘을 쓰고, 지역사회에도 눈을 돌렸다고 한다.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50번째 회원이고, 지역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탁주에서 만난 정규성 대표.2024.11.2 ⓒ News1 박소영 기자

그는 "수십 년간 소성주를 사랑해 준 인천시민이 무척이나 고마웠다"며 "그때부터 흑자 부분 일부를 지역에 공헌하자고 했고, 더 좋은 품질의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품질개발에도 힘썼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주량은 '의외로' 센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주량이 약한 것은 집안 내력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술을 잘 먹지 못했다"면서도 "그래도 술맛은 기가 막히게 잘 본다"고 웃어 보였다.

정 대표에게 소성주의 장점에 대해 물으니 "깔끔한 게 소성주의 매력"이라며 "술은 만드는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오랫동안 소성주 빚는 것을 담당해 온 직원이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라고 답했다.

정 대표는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에 관해 묻자 '김치'라고 답했다. 그는 "보통 파전 등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흔하지 않으냐"며 "김치만으로도 막걸리 맛을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인천시 부평구 인천탁주에서 만난 정규성 대표.2024.11.2 ⓒ News1 박소영 기자

imsoyoung@news1.kr